나는 패러독스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가난이라는 불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뿌리뽑고 싶을 만큼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 악이 어떻게 풍요로움의 원천일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패러독스다.

   나는 침묵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모든 추한 현실들을 다 떠올리지는 못하고 그저 이 현실에서 저 현실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1950년대에 이스탄불에서 확인했듯이 노동자들이 물도 전기도 없는 빈민가에 틀어박혀 살고 있는 걸 보고서 어떻게 침묵하겠는가? 레바논에서 만났던 아이들처럼 눈앞에서 어머니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전쟁고아들이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걸 보고 어떻게 침묵하겠는가? 부자들이 버린 쓰레기와 폐품을 주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세상 곳곳의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을 보고서 어떻게 침묵하란 말인가? 마닐라에서는 쓰레기더미가 쌓여 만들어진 산이 가스를 내뿜어 때때로 아이들을 산 채로 집어삼킨 일까지 있었다. 어린 사내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의 성적 착취에 대해, 10년간의 섹스관광이 가져온 그 엄청난 폐해에 대해 어찌 침묵하란 말인가?

필리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가 탄 비행기가, 주말을 이용해 미성년자들을 농락하기 위해 온 품위 있는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서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우아한 한 부인은 여행목적을 묻는 기자에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신선한 육체를 즐기려고 왔지요." 도를 넘어서는 말이었다. 그때 만약 내게 폭탄이 있었더라면 나는 가미가제 자살대처럼 달려들어 비행기를 폭파시켜 버렸을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대도시들이 사람들을 변두리로 내몰아 청소년들로 하여금 범죄와 매춘, 또는 마약 매매의 생활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걸 보고 어찌 침묵하란 말인가?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호화로운 조건 속에서 살고 있고, 다른 이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타인들의 빈곤 앞에서 일부 사람들이 보이는 무관심.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죄악이다.

--엠마뉘엘 수녀 지음/백선희 옮김 <풍요로운 가난>, 마음산책, 2001, 37~3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