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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즈넉해 더욱 안타까운 동진강 하구
  글쓴이 : 동요풀     날짜 : 06-04-27 17:27     조회 : 6974    
해마다 2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 동진강 하구는 봄을 만끽한다. 적도 근처 심해에서 부화해 이삼년에 걸쳐 험난한 여행을 마친 실뱀장이가 성장을 위해 모천을 찾아드는 계절을 맞아, 동진강 하구는 활기찬 봄을 연출한다. 어둠이 내리는 드넓은 하구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 뱃전에 길게 누었던 어부들은 일제히 일어나 모기장만큼 가는 어망을 내려 연실 떠올린다. 가늘고 투명한 실뱀장어를 부지런히 퍼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맘때 한두 달, 모질게 땀 흘리면 1년을 편히 지낼 수 있다. 실뱀장어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지만 그럴수록 경매 값이 오를 테니 동진강의 어부들은 이맘때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부챗살처럼 퍼지는 동진강 하구, 갯고랑 사이에서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했던 배들은 석양이 붉게 물들면서 긴장하고, 실뱀장어 잡이 어부들은 쌀쌀한 봄 바다에서 땀에 흠뻑 젖는다.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에서 부안군 동진면까지, 45킬로미터의 육지를 스쳐 황해로 흘러드는 동진강은 호남의 오랜 젓줄이다. 육상의 농지를 적셔줄 뿐 아니라 바다의 농장을 풍요롭게 일구어 주었다. 하구를 빠져나가 바닷물과 섞이는 강물은 육지에서 실어온 토사를 주변 연안에 8천 년 이상 갯벌로 곱게 쌓았고, 일제는 김제시 앞바다의 너른 갯벌을 간척하여 쌀을 수탈해갔다. 거기가 광활면(廣闊面)이다. 썰물을 따라 심포 갯벌을 감싸 안으며 스쳐가는 동진강 오른쪽 물은 김제군 진봉면 진봉반도 끝에서 바다를 쓸쓸히 바라보는 망해사(望海寺)와 헤어져 황해로 접어들고, 썰물을 따라 계화 방조제를 스쳐 왼편으로 지나가는 동진강 물은 계화산 봉화대와 헤어져 황해에 들어선다. 빙하가 낮아져 황해가 생긴지 8천년, 황하강의 지류였던 동진강이 오늘도 그렇게 황해와 만난다.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 새만금간척사업의 제방 석제용으로 밑동까지 뜯겨나간 변산반도국립공원의 해창산 앞 갯벌을 시작으로 3년 전 3월 말부터 65일 동안, 한 걸음에 우리네의 탐욕을, 한 걸음에 우리네의 성냄을, 한 걸음에 우리네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양 손과 양 발과 이마까지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대며 삼보일배를 수행했던 수경스님은 자신이 해창갯벌 연안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절 앞에 앉아 사형선고 받는 수많은 생명들을 안타까이 바라본다. 모두 신도라면서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의 넋을 달랜다. 너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망해사는 깨달음이 깊은 고승이 많았다는데, 길도 변변하지 않았을 당시, 망해사를 찾는 불심 깊은 신도는 누구였을까. 매립되고 오염된 요즘이야 짱뚱이나 백합도 황송하지만 그땐 달랐을 것이다. 계화도가 섬이었던 1960년대, 2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농합을 하루에 대여섯 마리 잡았다던 시절보다 훨씬 오래 적이므로, 꽃게, 가오리 지천이고, 숭어, 뱀장어, 전어, 준치, 흔전만전하며, 멀지 않은 칠산 앞바다에 황금조기 떼까지, 망해사 대웅전 앞은 아주 시끄러웠을 것이다.

계화도 어민들과 일단의 젊은이들은 바람이 거센 새만금 바닷가를 이따금 걷는다. 이른바 ‘바닷길 걷기’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간척공사를 중단하라!”고 판결한 행정법원은 갯벌을 질식사시키는 매립을 제지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33킬로미터가 넘는 외곽 방조제를 해체하거나 물 유통이 자유롭게 제방 일부를 트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겨우 2.7킬로미터 병목처럼 남은 구간의 방조제 축조를 중단시켰을 뿐이었다. 덕분에 들고나던 바닷물은 새만금 일원의 너른 갯벌을 목마르게 적셨다. 동진강을 지키는 어부들은 식솔 건사했고 바닷길 걷기에 나선 일행은 고즈넉한 동진강 하구에서 넋을 빼앗길 수 있었다. 서쪽 하늘부터 물들이는 붉은 석양에 취해, 주저앉아 눈물 뿌릴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 이 땅에 태어나게 해준 조상에게 감사해 하며 가슴 벅차한 사람들, 그들은 동진강 하구를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생태계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도 시작된 간척사업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대법원은 행정법원의 판결을 뒤집었으므로. 조상의 역사와 얼이 새겨진 동진강, 우리네 문화가 자리잡은 동진강 하구마저 매립하라고 명하고, 공사차량이 밤샘작업으로 간척구역의 마지막 물막이를 마쳤다. 새만금 일원의 갯벌은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바닷물과 강물이 오가던 동진강 하구가 사라지면 변산반도를 전래해온 우리네 역사와 문화까지 당대에 질식하고 말 것이다. 조상이 건네준 기억은 이내 아물아물해 질 것이다.

우리 서해안의 갯벌은 참 특이하다. 봄이면 실뱀장어가 수북이 올라오고 수많은 어패류를 비롯하여 주꾸미와 낙지와 같은 먹을거리를 한정 없이 제공해주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육상의 늪 이상 두터운 개흙은 플랑크톤이 가득해 생태계의 건강한 기반이 될 뿐 아니라 산소를 무한히 배출해주면서 이산화탄소를 줄여준다. 물이 썬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분열돼 연초록빛을 띄는 조류(藻類)는 산소를 생산하면서 갯벌에 터 잡은 뭇 생명의 원천이 된다. 수많은 게와 조개와 숭어는 그 조류를 뜯거나 훑어먹는다. 갯벌 속에 켜켜이 자리하는 조개의 탄산칼슘 껍데기는 무엇을 의미하나. 이산화탄소가 집적된 증거가 아니던가. 이렇듯 지구온난화를 방지해주는 갯벌이 서해안에 있다는 게 우리의 자랑이다. 어디 그뿐인가. 편서풍 지대의 거무튀튀한 갯벌은 찌는 햇볕에 산소와 습기로 충만한 바람을 육지로 전해주어 여름철에도 시원함을 선사하니, 우리네 금수강산은 언제나 푸르렀다.

산소와 습기만 육지로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지구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이른바 ‘가이아 이론’을 일찍이 우리에게 설파한 제임스 러브록이란 인물을 주목해보자. 그는 생명체 내의 단백질 구조형성에 필수인 황이 해안을 통해 공급되는 이유를 들며 인간에 의한 연안개발을 크게 걱정한다. 단백질 합성이 순조롭지 못할 정도로 황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면 지구의 생명력은 치명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염려한다. 생명의 끈을 연결해주는 갯벌은 그 자체로 생명이다. 갯벌이 품은 숱한 생명체들은 육상에서 쏟아지는 유기물을 자연분해하면서 성장하고, 갯벌을 자신의 산란장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갯벌을 우리의 허파요 콩팥이고 자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조간대에 드넓게 형성된 동진강의 하구 갯벌은 보는 이를 한가하고 고즈넉하게 만든다. 갯고랑 사이를 채워 들어오는 밀물과 빠져나가는 썰물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체험하며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찾는다. 해질녘 타는 노을에 반사돼 붉게 물들어가는 하구 갯벌은 찾은 이의 가슴을 알 수 없이 설레게 한다. 가을 녘 이마를 시원하게 스치는 바람 뒤로 파도치듯, 붉은 하늘을 한 켜 한 켜 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나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벅찬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동진강 하구의 갯벌에서 지평선을 한가로이 바라보며, 뇌리 깊숙이 자리하는 고향의 아스라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렇다. 갯벌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어머니다. 동진강 하구는 그 사실을 반추하게 한다.

우리들은 걸핏하면 어머니의 피부라 말하면서 대지에 아스팔트를 깔고 콘크리트로 메우며 독성 농약을 뿌린다. 그러면서 신발을 신는다. 아니, 신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한없이 받아주었던 어머니의 고왔던 피부를 자손이 더럽히고 말았다. 다시는 부빌 수 없게. 하지만 갯벌은 다르다. 들어서는 자식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맨발로 갯벌에 안긴 탕아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에 젖는다. 새만금 바닷길을 걸으며 종종 갯벌에 안기는 일행은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충만감. 같은 마음을 확인하곤 괜스레 반갑고 고마워, 상기된 표정의 동료를 덥석 끌어안고 싶은 심정. 서해안의 갯벌 아니라면 감히 느낄 수 없으리라. 동진강 하구의 너른 갯벌이 아직까지 그렇다. 고즈넉하여 더욱 안타까운 동진강 하구에서, 그러므로 눈물짓지 않을 수 없다.

해양문화에 천착하는 인류학자 주강현은 망해사 앞에서 가슴 답답해한다. 이러다가 망륙사((望陸寺)로 버림받지 않을까 참담해하면서. “토건국가를 그만 지향해도 될 법한데 여전히 토건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으로 후손 앞에 하염없이 민망해 한다. 해양학자인 서울대학교 고철환 교수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찬반 논란을 떠나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강조하고, 서해수산연구소 갯벌연구센터 조영조 소장은 “만경강 동진강은 탯줄, 갯벌은 태반”이라 지적한다. 우리나라 철새의 16퍼센트에 달하는 약 20만 마리가 찾는 도래지로, 람사 대상지로 지정해 국제적인 보전이 시급한 곳이건만, 하늘을 수놓는 철새들의 군무가 계절마다 펼쳐지는 동진강 하구를 우리 세대에 기필코 잃어야 하는 것인가. 바닷물이 다시 활발하게 유통한다면 예전처럼 살아날 수 있다는데, 우리들은 시방, 씻을 수 없는 범죄를 후손에게 저지르는 건 아닌가.

여전히 농사에 방점 찍는 시늉하는 정부는 새만금간척지 일원에 540여 홀컵을 가진 세계 최대 골프단지를 계획한다. 1억3천만 평으로 예정하는 매립지의 일부를 공여하라고 주한미군이 벌써부터 통보했다는 의혹도 있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요’하면 반드시 ‘허’해야 하는 주한미군주둔군협정을 들추어볼 때, ‘요’하기도 전에 알아서 ‘허’했던 전례를 미루어볼 때, 정부의 부인은 전혀 미덥지 않다. 새만금 일대가 필리핀의 미군 주둔지처럼, 치명적으로 오염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에 얽힌 제반 사정을 거의 알지 못한다. 군사정권이 왜 기획했는지, 공사 진행이 현재 어느 정도인지, 과연 정부 뜻대로 실효성이 있는지, 개발로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이 유포한 허구와 속임수 이외에 그 정확한 내용과 본질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토목건설 자본에 밀착된 지역언론은 주민들을 세뇌하고, 주민들의 막연한 기대를 표로 끌어내려는 정치권이 새만금 갯벌의 사망선고에 만세를 불렀지만, 갯벌도 엄연한 국토이며 자원이고 생명이다. 수입 수산물과 양식 어패류, 그리고 패스트푸드로 입맛 버린 시민들도 갯벌의 가치보다 매립지 면적만 생각한다. 엄청난 면적으로 매립된 기존 간척지들이 허구헛날 방치되고 있는데.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새만금 일대의 갯벌, 그 갯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동진강 하구는 이제 썩어 들어간다. 하구에 알을 낳던 어패류도 얼마 안 가 썩는 냄새를 바닷물 이동이 차단된 동진강 하늘에 밤낮없이 진동시키리라.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과 같은 갯벌의 생명가치들이 인간을 향해 외치는 참혹한 아우성이다. 시인 안도현은 ‘갯벌에서 놀던 강’이라는 시에서 “밤이 되면 물가에 알을 슬어놓고는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도둑게들의 발자국”과 “손바닥만한 대합이 달빛을 한입에 넙죽 받아먹는 소리”가 들리는 동진강은 바다에 스며들며 황해와 한 몸이 되었다고 노래한다. 그런 동진강 하구 갯벌이 ‘씨펄씨펄’ 소리 없이 죽어간다고, 강이 인제 망했다고 울부짖는다.

갯벌이 막히면 자궁이 막히는 것을 뜻한다. 자궁은 무엇인가. 후손이 잉태되는 곳이다. 자궁이 막히면 우리는 후손을 기약할 수 없다. 새만금 일원의 갯벌에 해수 유통이 막히면 후손은 동진강 하구가 베풀던 바다 생물을 다신 만날 수 없다. 갯벌 매립은 곧 콩팥의 매립을 뜻한다. 이 땅의 모든 갯벌이 매립되는 건 아니라지만, 매립되는 만큼 콩팥의 기능은 위축된다. 육지는 자신의 노폐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갯벌에 흙이 덮이면 열대우림보다 많은 산소를 생산해내던 자연의 허파는 숨을 쉬지 못한다. 아직 갯벌이라는 허파는 숨 쉴 공간을 남겨놓고 있지만 점점 줄어든다. 우리의 숨도 이내 가빠질 것이다.

새만금간척지에서 쌀을 생산한다고? 식량 자급률 26퍼센트를 맴돌며 오직 쌀만 자급하는 우리의 처지를 망각했나. 냄새나는 미국 쌀도 식탁용으로 수입하는 정부는 보상을 감행하면서까지 휴경을 권장하면서 간척지에서 쌀을 생산하겠다? 눈물겹다. 누군가 통일 후 북한에 공급할 쌀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의 식량사정을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북한의 훼손된 논을 당장 복원하거나 새로 만들어주어야 옳다. 자신이 개발한 논을 지키겠다는 평택의 대추리와 도두리 일원의 농민들을 몰아내며 수백만 평의 평야를 미군기지로 오염시키려는 정부의 태도는 또 어떤 모순인가. 조성 후 10년은 지나야 경작이 가능한 논보다 10배 이상 높은 칼로리가 보장되는 갯벌의 생산력은 무시해도 좋은가. 새만금 갯벌에서 구하던 오랜 어패류는 수입하면 그만일까. 해방 후 청산하지 못한 공유수면매립법에 근거, 매립하는 자에게 배타적으로 발생하는 공유수면의 소유권이 탐났던 게 아닐까. 후손의 생명이야 어찌되든 내 주머니만 불리면 그만이라는 묵시록적 개발행위가 아닐 수 없다. 2000년 어린이날, 18세 미만의 미래세대들은 새만금 일원의 갯벌을 보전해달라며 기성세대에게 요구했다. 조상들이 보전해 물려준 새만금 갯벌은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므로. 동진강 하구는 그 원형질을 보여주지 않던가.

이제라도 동진강 하구를 걸어보자. 갯벌을 지키려는 계화도 어민들이 얼마 전에 문을 연 쉼터 ‘그레’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공유하고 싶으니 안내해달라고 전화(063-583-3985)하면 맨발로 반길 것이다. 서해안고속도로의 부안 아이씨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읍을 지나 변산 쪽으로 달리다보면 ‘계화도’ 이정표를 만날 터이니, 그때 전화해도 좋을 것이다. 동진강변을 따라 걸으면 제 운명 앞에서 숨죽이는 하구를 고즈넉이 바라보며 타는 노을에 얼굴 붉힐 수 있다. 개발세력의 미망을 보며 치를 떨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조급해지는 마음은 이내 답답해진다.(해양과 문화 2006,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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