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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글) 주꾸미 철에 슬퍼지는 이유
  글쓴이 : 동요풀     날짜 : 06-04-19 14:21     조회 : 7363    
동백꽃이 흐드러질 때, 서천군 마량리 주민들은 때를 맞아 찾아오는 도회지 사람에게 한 가지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라방을 아시나요?” 소라방이라. 설마, 서천 방식의 머리방이나 노래방은 아닐 테고, 외양이 소라 닮은 찜질방인가. 500년 수령의 천연기념물 동백림이 붉은 꽃망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서천 땅에서 노래방이나 찜질방 따위를 자랑할 리 없을 테고, 조개를 캐 진주를 구하듯 소라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모양인가. 거대한 가리비가 열리자 비너스는 눈부신 8등 나신을 드러냈는데 서천군의 소라는 무엇을 드러낼까. 진주나 비너스는 아니다. 영양 만점인 주꾸미다.

소라는 이맘 때 주꾸미를 잡는 도구가 된다. 3월 말에서 4월 중순, 수온이 먼저 따뜻해지는 전라남도 해안은 이르게, 경기도는 다소 늦게, 알을 낳으러 얕은 바다로 올라오는 주꾸미는 갯벌 바닥을 기어다니다 속이 빈 소라에 숨어들기도 하는데, 어민들이 그 습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100개의 소라 껍데기를 1미터 간격으로 매단 밧줄이 수심 10미터 아래 바다에 수십 가닥 내려지는데, 밧줄 뭉치를 표시해둔 부표가 바다에 가득하니 얼마나 많은 주꾸미가 서천 갯벌에서 잡히는지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서너 소라방에 한 마리 정도로 들어가는 주꾸미는 몸 안에 밥풀 같은 알이 가득한 품은 암컷이 대부분이다. 수컷은 긴 그물주머니를 늘어뜨리는 낭장망에 암컷과 같이 잡힌다.

낭장망으로 잡은 주꾸미는 상처를 입지 않지만 소라방은 그렇지 않다. 빈 소라를 제 방으로 착각한 주꾸미를 밧줄을 끌어올려 잡은 어부는 소라 밖으로 주꾸미를 빼내야 한다. 이때 어부는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사용한다. 몸이나 다리를 찔러 밖으로 빼내는 과정에서 주꾸미는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고, 오래 살지 못하니 어부는 얼리거나 냉장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욕심 사나운 어부는 소라방이나 낭장망이 탐탁하지 않다. 그물을 갯벌 바닥에 끌면서 걸리는 어패류를 싹쓸이하는 불법 ‘끌방’이 자행하곤 한다. 축제가 벌어질 정도로 주꾸미의 인기가 높아진 이후에 발심한 이기적 행동일 것이다.

잡아 늘여보아도 20센티미터에 불과한 주꾸미는 몸에 비해 다리가 짧아, 8등신에 가까운 낙지와 달리 3등신이다. 하지만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주꾸미의 맛은 사촌간인 낙지와 비교를 불허한다. 쫄깃쫄깃하지만 질기지 않는 주꾸미는 비타민과 타우린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지방은 매우 적고, 값까지 저렴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영양식으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에 한한다. 5월로 접어들면 알현하기 어렵다. 연안 가까이 알을 낳곤 깊은 바다로 사라지기 때문이고, 그때 억지로 잡은 주꾸미의 살은 질기고 맛도 떨어진다. 폐인 반열에 이른 주꾸미 탐식가라면 어쩔 수 없이 냉동 주꾸미를 찾아야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냉동 주꾸미도 제 가치를 절대 잃지 않을 테니까.

갯벌이 넓은 바다라서 좋은 점은 많지만, 호주머니가 허했던 70년대 인천 지역의 대학생에게 특히 좋았던 것은 4월에 주꾸미를 저렴하게 만나는 즐거움이다. 주꾸미 철판이면 입맛 까다로운 신입생을 배불리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 고추장 양념에 재운 주꾸미를 갖은 채소와 버무려 철판에서 볶아먹다 지겨우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그만이었다. 인천에 와서 주꾸미를 처음 맛보았던 젊은이들이 어느새 대학생을 자식으로 두자, 주꾸미는 어엿한 전국 메뉴가 되었다. 갯벌 넓은 지역 술꾼들에게 편애되던 주꾸미를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다.

부안 변산반도, 군산 해망동, 서천 마량리, 보령 무창포를 이어 강화 선두리에 이르기까지, 벚꽃이 차례로 만개하듯, 남쪽에서 오르는 주꾸미 축제는 갯벌을 곁에 둔 지방을 한동안 북적이게 한다. 현지에서 만나는 회, 철판 가득 볶는 전골, 콩나물과 어우러지는 찜, 그리고 샤브샤브와 숯불구이로 화한 주꾸미가 소라방을 처음 보고 신기해하는 관광객의 식탁에 연실 올라가는 계절인 까닭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축제를 빙자한 한철장사를 위해 그 지방들의 소라도, 밧줄도, 낭장망도, 숨죽이는 끌방까지 도무지 쉴 겨를이 없으니, 주꾸미인들 온전할 수 있을까. 5월이면 낙지에 자리를 물려주었던 주꾸미, 낙지가 사라진 갯벌을 언제까지 지킬까.

불과 십여 년 전에만 해도 철사에 바투 끼워진 상태로 떨이로 팔리던 것이 주꾸미였다. 그 주꾸미가 다른 생선에 비해 여전히 저렴하지만 민중의 식탁에 언제까지 남을 수 있을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갯벌이 매립되고 오염되는 지금은 산낙지도 수입하는 세상이다. 해수면보다 지표면을 높게 올리기 위해 주변 갯벌을 준설해 매립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갯벌을 질식사시킨 간척지에서 정화 덜된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바다로 연실 토해내면서 꽃게 이상 흔했던 낙지는 사라졌는데, 낙지와 생태조건이 비슷한 주꾸미는 우리 갯벌을 내내 지켜낼 수 있을까. 낙지가 사라지면서 대접받기 시작한 주꾸미는 내일을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주꾸미마저 수입하는 세상이 되는 건 아닐지.

한 걸음에 나의 탐욕을, 한 걸음에 나의 어리석음을, 한 걸음에 나의 분노를 반성하며 두 팔과 두 다리와 이마까지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를 반복한 2003년의 삼보일배를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기억한다. 그 삼보일배는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스런 새만금간척사업을 반성하는 4분 성직자의 비폭력 직접행동이었다. 쌀쌀했던 3월 말, 부안 해창갯벌에서 출발한 삼보일배를 묵묵히 뒤따르던 환경활동가들은 해질 녘 계화도로 모였다. 33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제방으로 거의 둘러막힌 갯벌이나마 주꾸미가 있어 피로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에 매립된 계화도 간척지에서 지역주민과 환경활동가와 둘러앉아 붉게 타 내려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맛보았던 주꾸미는 아직 뇌리 속에 남았는데, 오늘도 토석을 실은 덤프트럭은 새만금 제방을 내달린다. 1억3천만 평에 달하는 새만금 갯벌은 얼마 안 가, 하루 두 차례 오가던 바닷물을 맞지 못할 것이고, 수천 년 삶을 이어온 주꾸미에게 감내할 수 없는 재앙이 강요될 것이다. 주꾸미는 수입해 먹는다 치고, 탐욕만 남을 인간의 어리석은 삶은 누구의 분노를 살까. 자신의 삶을 반성하지 못하는 인간은 잔인한 4월을 무심히 보낸다. (물푸레골에서,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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