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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상을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풀꽃세상'을 위해 감사나 북돋움이나 연민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우리의 생각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 표현의 형태를 우리는 '풀꽃상'이라 붙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의 갯돌, 가을 억새, 인사동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의 물봉선, 지렁이, 자전거, 논, 간이역, 비무장지대, 우리씨앗 앉은뱅이밀에게 풀꽃상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란 풀꽃세상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풀꽃상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생의 가치에 대하여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대하듯이 자연을 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풀잎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풀씨의 마음'이라 부르려고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힘을 우리는 믿고, 또한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풀씨의 마음을 뿌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풀씨들을 북돋고자 합니다.

  밥과 사람은 한울님 - 허정균 (변산바람꽃님 페북 글)
  글쓴이 : 풀꽃세상     날짜 : 15-03-18 00:02     조회 : 2310    
밥과 사람은 한울님
홍준표 지사, 그러는 게 아닙니다.
당신도 전북 부안 줄포로 호적을 파서 옮기고 거기서 방위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음은 줄포 근방에서 겪은 일을 10여년 전에 쓴 글입니다. 밥 한 그릇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당신, 아래 시 주인공과 비슷했을 텐데 그러는 게 아닙니다. 애기들이 밥 한그릇 먹는 데에서 옛날처럼 비참함을 느끼도록 해야 쓰겠습니까? 하늘처럼 받들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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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서 보리밥이 가장 맛있는 집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
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난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
보채다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야
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
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
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
어미는 눈물과 한숨을
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
벼 몇 섬의 빚과 함께 남겼단다
뼈골이 부숴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 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뼈골이 부숴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 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야
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
누더기옷의 아이야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
사내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
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
보다 더 뼈골이 부숴지게 일을 해서
머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
일가친척 하나 없는 아이야
혈혈단신의 아이야
너무 외롭다고 해서
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 누구도 믿지 말라
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
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
맑은 눈빛의 아이야
빛나는 눈빛의 아이야
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전문 - (1965. 청맥)
위 시에 나오는 아이는 196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을테니 나와 거의 동년배이리라. 전후 베이비 붐을 타고 5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의 한국은 무척이나 가난했었다. 다들 그랬다. 넓은 간사지 논에서 수확한 쌀들은 어디로 갔는지 겨울은 고구마가 주식이다시피 하였다. 봄이 되면 그나마 없어 끼니를 못 때우는 집이 많았다.
그러나 변산에서 자란 우리는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사방에 먹을 것이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들판에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봄이면 우리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3월이면 야산에 지천으로 널린 춘란의 포기마다 살진 꽃대궁이 들어앉아 있는데 우리는 꽃이 피기 전의 꽃대궁을 뽑아 호주머니마다 가득 넣어가지고 다니며 껍질을 벗겨 먹었다. 4월이 되면 칡뿌리, 깐치밥이라 불렀던 산자고의 구근 등을 캐어 먹었고 노오란 유채꽃이 만발 하기 전의 유채꼬둥을 주인 몰래 끊어 먹다 주인에게 들켜 도망질을 치기도 하였다. 5월이 되면 찔레꽃이 피기 전에 살이 도톰하게 오른 찔록을 꺾어 먹었고, 제방에 흔전만전했던 삐비를 뽑아먹었다.
이렇게 봄을 보내다 보면 보리가 누렇게 익어갔다. 우리는 비로소 알곡을 서리해먹기 시작했다. 밭둑에 검불 한 두름 보리모개 한두름씩을 켜켜이 쌓아놓고 불을 질러 잿속에서 보리 모개를 골라 손으로 부벼 후후 불어 먹다 보면 주둥이가 새카맣게 되었다.
여하튼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식품이다. 농약에 찌든 먹거리 천지인 요즘 옛날 가난했을 때 먹던, 농약을 치지 않는 보리, 서속, 기장, 메밀 같은 잡곡이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간밤에 술로 부대낀 속을 다스리기 위해 보안면 유천리 그 할머니 보리밥집을 다시 찾았다.
영전4거리에서 곰소 방면으로 정확히 2.1km를 가면 오른편에 '원조보리밥집'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할머니는 쪽파를 다듬고 계셨다. 올해 연세 70이신 박승의 할머니는 이 곳에서 태어나 자라 이웃 동네로 시집을 갔고 잠시 이웃 줄포에서 식당을 하면서 조금 살았을 뿐 평생 이 마을을 떠나지 않으신 분이다.
테이블은 단 두 개 뿐인데 한 테이블에는 이미 밥상이 차려져 아동용 양산을 개조한 덮개에 곱게 덮여 있다. 옛날 찬장도 없던 시절 살강 위에 찬거리 놓고 상포로 덮어놓던 모습이 떠올랐다. 밥상이 차려지기 전에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겉저리가 큼지막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여름에는 상치를 절여서 주는디 이놈 저시사리 무친 놈이 더 맛난게 잡숴봐"
펄펄 살아서 밭으로 다시 돌아갈 듯한 배춧잎이 깨소금, 고춧가루 등 각종 양념을 뒤집어 쓰고 아직도 뻗시게 살아 있지만 그 맛이 일품이다. 간은 멸치액젓으로 맞춘다고 하였다. 이 맛의 칠할은 멸치액젓에서 나오리라. 곰소멸치액젓은 전국 최고의 품질이 아니던가.
진한 황톳빛 토장찌개와 함께 보리밥이 나왔다. 보통 보리밥은 거무튀튀하지만 이집 보리밥은 흰쌀과 거의 차이 안나는 색깔이다. 밥 위에는 고추장을 듬뿍 뜬 수저가 올려져 있다. 콩나물, 파래무침, 단무지 몇 조각, 무생채, 시금치나물, 파김치, 게무젓, 김장김치 등이 찬으로 곁들여 나왔다. 이미 상은 이들만으로 가득 찼다.
"깻잎, 고춧잎 절인 것도 있는디 안내왔어"
여기 나온 반찬들은 모두 집에서 손수 할머니가 만든 것들이다. 고추장도 보리를 갈아 만든 보리고추장이란다. 토장 된장 맛은 먹을수록 깊이 있고 개운한 맛이다.
"해마다 된장을 두 수퉁아리씩 담어. 그러면 메누리도 퍼가고 딸도 퍼가고 그러지"
농발게 게젓이라며 내오셨다.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농발게는 워낙 날쌔게 줄행랑 치는 바람에 잡을 엄두도 나지 않는데 이렇게 젓을 담은 것을 보는 것만도 처음이다. 게를 잡아오면 배딱지랑 다리 떼어내고 돌확에 들들 갈아 마늘 고춧가루 생강을 넣고 담근다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농발게젓을 맛보게 되다니....’
"찬지름은 이렇게 쪼까썩만 쳐야 혀"
하시면서 줄포에서 직접 짜오셨다는 참기름은 직접 넣어 주신다. 어린 시절 참기름 많이 넣으면 좋은 줄로 알로 듬뿍 넣었다가 비빔밥을 끝내 다 먹지 못하고 남기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밥을 한 양푼 퍼서 더 자시라고 옆에 갖다 주신다. 밥값을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어찌께 돈을 더 받을 수 있느냐"며 고개를 저으신다.
김선생이 이 장면을 보고 얘기를 꺼냈다.
"이 아래 흥덕에 가면 거기도 할머니가 식당을 하는 데가 있는데 이 할머니는 주조장 이사인데요, 왜 이사냐면 주조장 주인에게 좀 늦게 익으면 될 일을 왜 약을 타냐고 간섭하면서 약을 탄 막걸리는 가져다 팔지 않는거라. 그래서 그 막걸리를 마시면 아무리 마셔도 이튿날 머리가 안아파요. 식당에 들어서면 테이블은 딱 하나예요. 그것도 반절은 반찬그릇들이 놓여 있는데 백반 한 상이 다른 데 3천원 하던 때에 1500원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와서 밥을 세 그릇까지 먹거든요. 그래서 밥 더 먹는데 왜 돈 더 받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지요. 그 답변에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그 할머니의 답변은 바로 이 한마디,
"밥을 더 먹는 것은 그 사람 타고난 복이여"
자본의 논리를 한 순간에 뛰어넘음과 동시에 밥 한 그릇이 우리의 목숨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는 사람도 한울님이고 밥 한 그릇도 소중한 한울님이다. 해월 최시형 선생의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以天食天)'의 동학사상이 바로 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보리밥은 게으른 며느리가 잘한다'는 말이 있다. 불의 강약을 조절해가며 오래 시간을 두고 해야 보리밥이 잘 지어지는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보리밥을 잘 못혀. 내 이날까지 보리밥을 해봤지만 한번도 우그렁우그렁한 적이 없었어. 사람들이 다덜 와서 그려. 할머니네 보리밥이 제일 맛있어라우"
보리밥을 어떻게 지어야 잘 짓는지 여쭈었다.
"보리를 확독에다 놓고 들들 문대야 혀. 그렇게 해서 솥에 앉히고 불을 진진하게 때서 밥이 인자 퍼졌다 싶으면 쌀 한주먹을 가만히 놓아. 그리각고 또 불을 때, 만일에 보리가 들(덜) 퍼졌을 때 쌀을 놓으면 싹 섞어져가지고 쌀 귀경도 못혀"
돌확에 놓고 가는 이유는 두꺼운 겉껍질을 최대한 벗겨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곡식의 유실이 따르겠으나 씻어낸 뜸물은 돼지의 먹이가 되었으니 아까울 것은 없다. 쌀을 넣지 않을 경우에도 보리밥은 불을 두세 번 때면서 하는데 마지막에 밥 위에 가지를 넣고 함께 익힌다. 그러면 가지에 밥물이 적당히 베어든다. 솥뚜겅을 열면 이 가지부터 꺼내 찬물에 담가놓은 다음 이를 찢어서 가지나물을 무친다.
바쁜 농가에서 매끼니 이런 식으로 밥을 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대개 보리를 초벌 삶아서 건져 놓은 다음에 끼니마다 이를 이용해 두 번 밥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쌀을 한알도 넣지 않은 꽁보리밥을 '꼽쌀미'라고 한다. 두 번, 즉 곱으로 삶았다는 뜻이다.
"꼽쌀미밥은 쌀을 하나도 안넣고 하는 것인디 물이 잦아들덜 안허고 혀서 솥을 들고(자주) 열어봐감서 히야 혀."
보리는 쌀과 달리 한가운데 까만 금이 가있다. 껄끄러운 보리밥 먹기 싫은 아이는 보리밥을 관찰하면서 '금을 따라 보리를 반으로 자르면 쌀밥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였다.
"옛날에 쌀밥이나 한 그럭 먹고 죽으면 쓰겄다 하는 사람들 많았어라우. 평상을 쌀 한 말 못먹어. 이 근방이가 다 밭이여, 논이라고는 없었어."
한겨울에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부자였다.
옛날에 보리를 천시해왔고 지금은 보리밥 구경하기 힘들지만 보리는 긴 겨울을 눈 속에서 자라는 작물이라 냉기를 품고 있어 여름철에는 보리밥을 먹고, 겨울에는 한여름 태양빛을 한껏 받고 자란 쌀밥을 먹어야 음식의 음양이 맞아 건강에 좋다고 한다. 더구나 보리는 밀과 함께 겨울을 나는 작물이라 농약을 칠 필요가 없는 무공해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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