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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상을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풀꽃세상'을 위해 감사나 북돋움이나 연민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우리의 생각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 표현의 형태를 우리는 '풀꽃상'이라 붙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의 갯돌, 가을 억새, 인사동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의 물봉선, 지렁이, 자전거, 논, 간이역, 비무장지대, 우리씨앗 앉은뱅이밀에게 풀꽃상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란 풀꽃세상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풀꽃상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생의 가치에 대하여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대하듯이 자연을 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풀잎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풀씨의 마음'이라 부르려고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힘을 우리는 믿고, 또한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풀씨의 마음을 뿌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풀씨들을 북돋고자 합니다.

  원주 십시일반 이야기
  글쓴이 : 말북     날짜 : 14-07-01 13:31     조회 : 4240    

스토리텔링: 시인(詩人)이 된 노숙자 김성원 씨

생(生)을 마감하려고 기차 탔는데…

2012.12.31  (월)
박성준 기자 (synergyt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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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김성원(59) 씨의 고향은 여주이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재혼했다. 의붓아버지의 배다른 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가정의 따뜻한 울타리를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이곳저곳 떠돌다 배운 것이 없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농사를 지었다. 성년이 되자 군대에 갔다.

휴가 때 남들은 가족, 애인을 만나기 위해 군화에 광을 내느라 바빴지만 김 씨는 휴가를 나가도 반겨주는 이가 없어 오히려 군대가 더 편했다. 제대 후 이불 장사, 채소장사 등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극장에서 한 아가씨를 만나게 됐고 둘은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자 또한 상처가 많았기에 둘은 서로를 감싸 안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결혼식을 치를 형편이 못됐기에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 7년 만에 아내는 임신을 했다. 김 씨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었다. 7년 만에 태어난 아이였기에 아내는 모유를 수유했다. 부부는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했기에 아이 만큼은 모유를 먹여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엄청난 불행이 닥쳤다. 김 씨가 출근한 어느 날 아내는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 대문도 없는 작은 집이었는데, 김 씨가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성폭행을 당한 것.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김 씨는 거리에서 열심히 장사를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김 씨를 볼 면목이 없다며 아이를 데리고 떠난 것이다. 김 씨는 여러 사람을 통해 수소문을 했지만 아내를 만날 순 없었다.

이후 김 씨에겐 희망이 사라졌다. 매일 술을 마시며 상처를 달랬다. 점점 세상이 싫어졌다. 세상과 단절하기로 마음을 먹고 절을 찾았다. 숲속에 깃든 절은 어떠한 상처와 미움도 없을 것만 같았다.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학력이 낮아 절에서는 스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스님도 되지 못하는 운명에 떠돌이 중이 됐다. 갈 곳도 없고 정 붙일 곳도 없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결국 행려자가 됐다. 행려자가 되니 얻어먹는 것이 습관이 됐다.

청량리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기차역에 박스를 깔고 누워 기차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내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기차를 타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열 속에 잃어버린 가족이 있을 것만 같았다.

구걸을 해 돈이 생기면 술을 마셨고, 봉사단체에서 나눠주는 급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러다 삶에 대한 마지막 결심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기차 유리창을 바라보며 남은 생을 정리하다가 눈을 뜬 곳이 바로 원주역이었다. 원주역 노숙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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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씨는 1년 전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고물 수집 차량을 운행하기 위해서다. 운전면허증 취득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2부

원주에 왔지만 배고픔은 어쩔 수 없었다. 서울보다 원주의 겨울은 추웠다. 뼈를 파고드는 추위를 피해 십시일반이라는 곳을 찾았다. 십시일반은 열 사람이 밥을 한 술씩만 보태도 한 사람이 먹을 밥은 된다는 말로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IMF로 모두가 생계에 곤란을 겪던 1997년 문을 열었다. 김 씨는 이곳에서 십시일반을 운영하고 있는 곽병은 원장을 만나게 된다. 곽 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빛은 김 씨의 아픈 과거를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곽 원장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은 꼭 할 수 있고, 꼭 해야만 합니다"라며 용기를 줬다. 그렇게 십시일반 생활이 시작됐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동안 자신의 삶에 멘토가 되어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 김 씨에게 곽 원장은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아들이었다. 곽 원장은 김 씨를 볼 때마다 물었다 "별일 없으시죠?" 김 씨는 곽 원장이 이렇게 물을 때마다 "'술은 안드시죠' 라고 금주를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곽 원장과의 믿음과 신뢰 속에 절주를 실천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술을 끊는다는 것이 한 번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점점 술을 줄이며 결국 금주에 성공했다. 술을 끊은 지 4년 5개월째가 되니 몸도 좋아졌다. 노숙생활동안 괴롭혔던 췌장암 말기 증세도 점점 회복됐다. 곽 원장을 비롯한 십시일반 직원들에게 신용을 얻다보니 정신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무엇인가 시작하고 싶은 용기가 생긴 것이다. 십시일반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희망대학프로그램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 수업을 접했다. 수업에 열중하며 인생을 돌이켜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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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그동안의 인생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시를 통해 세상을 말하고 싶었고, 세상을 노래하고 싶었다. 시상이 생각나면 담배 갑을 뜯어 시상을 적었다. 시어의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지난 인생을 담아내는 시 쓰기는 큰 위로가 됐다. 시를 통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 삶과 하나가 되는 시어들을 통해 미래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김 씨는 "시는 미래를 앞당기고 과거를 돌이킬 수 있다"며 "부정을 긍정으로, 미움을 이해로, 삶과 죽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했다. 자신의 인생 속에 얽힌 사연을 들추어냈다. 김 씨는 "노숙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6월 땡볕에 죽음을 앞둔 노인을 보게 됐지요. 무엇을 드릴까요? 물으니 나이 많은 노숙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냥 안아 주세요." 노인을 품에 안자 노인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노인은 평화로워 보였다.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다는 것에 작은 희망을 꿈꿨다. 삶에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 노숙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졌다.

4부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평소 형으로 부르는 이상길 노숙인 센터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센터장은 노숙인 센터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노숙인들의 형과 동생으로 직접 피부를 맞대며 노숙인들의 문제를 듣고 해결해 준다.

이 센터장은 김 씨를 위해 후원자를 찾았고 무료로 땅을 빌리는데 성공했다. 생계를 위한 운전면허도 준비했다. 농사 이외에도 고물상 수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차량이 필요했던 것. 밤낮 없이 공부한 결과 1년 전 운전면허 취득에 성공했다. 운전면허를 딴 뒤 차도 샀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생계를 위한 도구를 하나둘 모으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김 씨는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을 때 가장 기뻤다"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거주할 공간도 생겼다. 몇 평 안 되는 작은 월세방이지만 보금자리가 생긴 것이다.

지난달 20일은 김 씨와 십시일반 가족들에게 매우 행복한 날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성오(65) 씨가 여인숙 생활을 끝내고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날이었기 때문. 거동이 불편한 이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다. 2년 전부터 김 씨는 이 씨를 위해 간병을 했다.

간병을 통해 이 씨와 김 씨는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됐고 퇴원을 하고 나서도 둘의 관계는 지속됐다. 십시일반은 의식주 해결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충해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서로의 상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노숙인들은 십시일반에서 소통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이 씨의 이삿날에는 김 씨가 차를 몰았고, 이 센터장을 비롯한 노숙인 센터 직원들이 짐을 날랐다. 이삿짐이라곤 전동휠체어와 김치, 이불이 전부였다. 하지만 새 집을 갖게 된 이 씨의 표정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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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여인숙 생활을 벗어나 집을 장만한 이 씨를 축하하며 김 씨는 눈물을 흘렸다. 노숙생활을 하던 본인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십시일반으로 돌아온 김 씨는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금주교육 수업에 참여했다.

술은 끊었지만 술을 먹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노숙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다. 내년이면 임대주택에 입주할 계획이다. 사실 지금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지만 동네 통장이 김 씨의 성실한 삶을 높게 평가한 나머지 동네에서 이사를 가지 말라고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도 늘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지역주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가끔 원주역에 나가 기차를 바라본다. 처음 원주에 도착했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내년이면 갈거리협동조합에서 대출을 받아 농사자금을 확보한 뒤 농사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김 씨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편의 시(詩)인데 시는 내 삶을 완성해 주고, 내 삶 또한 시를 완성해 준다"고 말했다. 시를 쓰는 삶이 자신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김 씨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에 하늘에서 눈이 날렸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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