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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암산-박영근
  글쓴이 : 변산바람꽃     날짜 : 11-08-05 21:26     조회 : 4432    

 

 

대 암 산

 

― 박 영 근 ―

 

 

 

 

 

 

 

차디찬 안개가 상병이나 일등병 계급장을 단 골짜기와

 

벼랑, 나무들 사이를 기어다니며

 

길을 지우고 흔적을 덮고

 

예고도 없이 밤중엔 비가 쏟아졌다

 

암구호만 살아 번쩍이던 산

 

 

 

 

 

 

 

판초우의를 쓰고 비에도 젖으며

 

때로는 검은 나무 사이 떨어지는 별빛에도 놀라

 

M16 자물쇠를 풀던 긴 밤

 

어떤 악몽은 매복호를 몰래 빠져나와

 

비트를 찾아

 

나무뿌리 밑이나 바위 틈을 뒤지다

 

부비트랩에 걸려 터지고

 

 

 

 

 

 

 

안개는 제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붙잡고

 

죽음의 기억까지 녹슬게 하고,

 

우리는 찌그러진 반합통 같은 얼굴로

 

지난밤의 총탄이 박혀 있는 나무둥치와

 

몇 마리 오소리들을 보고 돌아서곤 했다

 

 

 

 

 

 

 

살아 붙잡을 것은 물소리 밖에 없었던

 

내 마음의 대암산

 

이십년이 흘러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귀울음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울려오는 선무방송

 

 

 

 

 

 

 

헬기가 날아와 K레이션을 떨어뜨리며

 

요란하게 민간인 노래를 틀어주던 날

 

얼마 동안인지도 모르게 나무 뿌리와 바위와 흙을 갉아먹은 얼굴로

 

뿌윰하게 떠다니는 해의 형상을 바라보던 사내의

 

발 밑에서

 

K레이션 깡통의 이빨이 흙을 물어뜯고 있던

 

그 자리

 

 

 

 

 

 

 

비트 속에 몸을 꼬부리고 나는 생각한다

 

한라산, 진달래······

 

아리랑, 도라지······

 

기억 속에 떠올라 무슨 표적처럼 넘어지고 쓰러지는

 

암구호들을

 

 

 

 

 

 

(박영근 시집,『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작과비평사, 1997)

*대암산:강원도 인제 펀치볼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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