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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글쓴이 : 변산바람꽃     날짜 : 10-04-13 09:26     조회 : 9585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천상병 문학상 심사평

수상후보 중 송경동이 돋보인 것은 그의 시는 곧 그의 삶의 궤적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 편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시 가운데서는 시를 위한 시, 말장난의 시가 없었다. 엄혹하고도 치열한 삶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돼 나오는 절규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이 점이 반드시 시의 미덕일 수는 없고, 오히려 시를 읽는 재미를 반감한다는 문학주의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시는 그 시대의 질문이요 대답이라는 시 본래의 성격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면 그의 시가 갖는 의미는 마땅히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시는 7,80년대의 노동시나 현실비판시에 맥을 대고 있어, 이를테면 김남주와 박노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체적 상상력이 그의 시의 동력이 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체화되면서 시의 순도를 높이고 있다. ‘가두의 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같은 가편들은 그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울림을 줄 것이다. 한편 그의 시에 나오는 현실이 우리 현실의 총체적인 모습은 아니며 그의 부정적 시각은 부분적으로 과장 혹은 왜곡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에 재현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도 안되는 어느 곳엔가 실재하는 현실이다. 오늘의 시인들이 그것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오히려 비판받아야 한다는 문학 밖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때 우리시의 어두운 미래의 모습이 걷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시를 수상작으로 뽑는 데 선자들이 쉽게 동의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시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신경림, 정호승, 이경철)

[천상병 詩상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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