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마을풀: 철걱철걱 쇠가위 소리도 요란하게 마을을 찾아드는 엿장수는 엿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물건들도 함께 팔았는데 그중 가장 탐나는 게 바로 매미 모양으로 납짝하니 반짝반짝 빛나는'은빛 호각'이었습니다. 나는 만만한 막내 고모를 무진 졸라댄 끝에 엿장수에게 빈 병을 내주는 대신 호각을 손에 쥐는 데 성공합니다. 삐이삐이 호각을 불어대며 그 순간 세상을 다 가졌습니다.나른한 봄날 오후던가, 아니면 가을날이던가, 끊임없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를 들으며 베틀 옆에서 호각을 입에 문 채 뒹굴던 나는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나서 슬그머니 호각이 사라지고 맙니다. 기억이 아슴아슴한 것이, 호각이 없어진 게 그때 잠든 사이의 일인지 그후 여러날이 지나서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은빛 호각이 곁을 떠나면서 내 유년시절도 어느틈엔가 끝나갔다는 것이지요. 아주 먼 뒷날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일입니다. 시집 '은빛 호각'의 시편들에서는 '사람의 삶이 아직 광활한 자연의 일부였을 때'를 그리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살갑게만 다가옵니다. 어느날 내게서 홀연히 사라지고 없는 그때 그 빛나던 은빛 호각처럼.
--[04/09-10:17]--
길풀: 아름다운 결정전을 읽으면 제 몸 속의 세포들이 바짝바짝 일어섰습니다. 이 지구 어디선가 벌여졌던 지난 결정전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시인의 시선이 참나무마을풀님 말씀처럼 살갑습니다. 그리고 따듯하고 조용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은빛호각을 좀 시끄럽게 불러보고 싶은 욕구도 치미네요. --[04/10-00:59]--
참나무마을풀: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순한 개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띄어지지요. 잊혀졌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장면입니다. 내게서 사라져간 것이 어디 은빛 호각 하나뿐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따뜻한 시를 한 편 더 읽어봅니다.
대흥사 아기스님 둘이서 키를 쓰고 아랫마을로 소금 얻으러 갔다가 어느 호랑이 할매에게 붙잡혀 "네 이놈들 다시 한번 이불에 오줌을 쌌다가는 가위로 고추를 잘라 버리겠다." 는 위협에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TV 카메라에 잡히고 말았는데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새 새끼처럼 한껏 벌린 그들의 목젖이 아침 햇살에 발그레 하게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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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마을풀: 철걱철걱 쇠가위 소리도 요란하게 마을을 찾아드는 엿장수는 엿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물건들도 함께 팔았는데 그중 가장 탐나는 게 바로 매미 모양으로 납짝하니 반짝반짝 빛나는'은빛 호각'이었습니다. 나는 만만한 막내 고모를 무진 졸라댄 끝에 엿장수에게 빈 병을 내주는 대신 호각을 손에 쥐는 데 성공합니다. 삐이삐이 호각을 불어대며 그 순간 세상을 다 가졌습니다.나른한 봄날 오후던가, 아니면 가을날이던가, 끊임없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를 들으며 베틀 옆에서 호각을 입에 문 채 뒹굴던 나는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나서 슬그머니 호각이 사라지고 맙니다. 기억이 아슴아슴한 것이, 호각이 없어진 게 그때 잠든 사이의 일인지 그후 여러날이 지나서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은빛 호각이 곁을 떠나면서 내 유년시절도 어느틈엔가 끝나갔다는 것이지요. 아주 먼 뒷날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