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 '시와 시학' ( 2003, 가을호)에서 옮김
 참나무마을풀: 해남땅 고향 가는 길 위에 있는 김남주 시인(1946~1994)의 시.
어제가 백로(白露)였지요. 기러기가 날아오고 제비가 강남으로 떠나며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는 절기, 풀잎에 이슬이 젖어내린다는, 24절기 가운데 열다섯째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저녁 무렵엔 흰 양떼구름 사이로 음력 열이틀 달이 언뜻언뜻 엿보이기도 했건만 밤 사이 또 비가 다녀갔습니다. 하루 걸러 내리는 이 비는 이제 제 버릇이 되었나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창밖을 내다봅니다. 키 큰 측백나무를 다 타넘고 나팔꽃이 보랏빛 꽃송이들을 피워올렸습니다. 큐우슈우 남쪽의 작은 섬 야쿠섬에 살다 간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은자시인 야마오 산세이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꽃송이들을 하나하나 세어 봅니다. 눈에 헤아려지는 것만 쉰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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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님들,
날씨가 지금 그렇다고는 해도 추석명절은 즐겁고 편안하게 쇠시기를.... 그리고 풀꽃평화연구소에 계신, 최근 춘천에 연구소 지소까지 여셨다는 왕풀님, 시풀님, 산풀님... 추석 지나면 이곳 시창에서라도 전처럼 자주 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09/09-09:00]--
산풀: 또 저리 비가 오니 추석달을 보기는 다 틀렸습니다.
고향으로 가시는 분들의 마음도 비에 젖어
마냥 무거울 것만 같습니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올해처럼 쓸쓸한 적도 없었겠지요.
그래도 희망의 씨앗 한 톨씩 품고
송이송이 피어날 희망의 꽃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늘 시창을 밝혀주시는 참나무마을풀님, 바냔나무님, 고맙습니다.
좋은 시 한 편으로 마음의 궁핍을 털어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달이 자꾸 따라와요
이 상 국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는 소리 밟으며 쇠똥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8
--[09/09-10:59]--
참나무마을풀: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다니요.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리고 또 그 아들로 순연하게 이어지는, '쇠똥냄새' 같은 이 정겨운 풍경이 얼마나 따스한지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늘 등불 같은 한 줄기 희망을 이야기하시는 산풀님, 좋은 시 고맙습니다. --[09/10-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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