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배 고란초


   그곳이 어디든 떠돌다 버려지면 넉배로 가는 길이 보인다. 물어서 갈 수 없고 몸보다 앞서서는 이를 수 없는 넉배, 배도 유민도 흘러가고 배턱만 갈대에 기대어 흔들리는
   거기서는 쏟아지는 눈 그치고
   망설이다 퍼붓는 눈, 사이사이 어두운

   눈 휩쓰리는 막다른 골길
   화약창 한 귀퉁이 움막에는
   아범이냐, 하고 문 열어체치는 할머니,
  
   쫓기는 아들 한번 스치려고 인공 때 대치 참나무댕이에서 막걸리 빚고 주먹밥 뭉치던 손 비집고 터져나오는 기침 소리, 애끓는 소리 가라앉지 않아 온 산판을 헤매면서 사방에 육남매 두고 거기 흩어져 살다 버려진 마티 할머니

   남은 숨결, 잎 뒤에
   볼록 튀어나온
   화약 종이 같은 홀씨 주머니에
   따스히 감싸안는 고란초,

   바람받이 바위벽에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뿌리를 내린다.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


   상처 깊숙이 노을을 받는 그대, 훌쩍 바람이나 쐬러 올라오시죠. 때 없이 가물거나 가물가물 사람이 죽어가도 세상은 땅에서 자기들 눈높이까지, 한걸음 윗세상은 빈터 천집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무정부주의잡니다. 여기서 미리 집 없이 사는 자가 되어보고, 저 아래 이글거리는 땅 사람 그대를 둘러보고 여름이 다 끝날 때 내려가시죠.
   풀벌레가 울기 시작합니다. 다시 길을 낼까요? 초저녁 한적한 물가나 무덤가로 나오시면 푸른 반딧불 하나 내려보내겠습니다.




   극야
   ㅡ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1


   서울이나 평양에서 오지 않고
   사우스 코리아나 노스 코리아에서 오지 않고
   우리가 어린 시절 맨 처음 구릉에 올라 마주친 달빛을 눈에 가슴에 다리에 받아와 꿈을 뒤척이던 그 금강 그 개마고원에서 온 날은 구름에 살얼음이 잡히고 광륜을 단 두 개의 달이 마주 떠 얼음 안개 속을 스치는 화살 다리를 비추고 있었던가요.

   화살 다리* 그 아래
   낮은 판잣집 지붕 밑에서 에스키모들은
   술과 마약과 달러와 민주주의에 취해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빙평선을 사이에 두고 무엇을 찾으려 했던가요.

   그날 나도 모르게 다가가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자 당신은 '개마고원요' 하고 얼어 있는 나와 갑자기 내 뒤에서 저절로 맞춰진 우리의 환한 얼굴까지 함께 보았지요. 그때 나는 비로서 우리가 서로 幻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한 얼굴로 극광을 보면서 광륜을 단 두개의 달을 굴려 극야에서 주야로, 다시 백야를 향해 가고 싶었던가요.

   극야를 넘어 67일째, 마침내
   15분 간 떠 있던
   금강에서 개마고원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해.



  

_신대철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문학과지성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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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입니다. 로밍은 안되어도(해왔지만 서비스 지역이 아닌지 잘 아됨) 인터넷은 되는군요. 지구촌이 맞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꽤 작은 곳입니다. 세부 같은 데가 아니라 북부입니다. 아직 오지로는 안 들어갔습니다. 오지로는 이번에 못 들어갈 듯합니다. 일이 밀려서요..

개마고원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어떤어떤 경로로 컴텨에 저장되어 있던 시입니다. 

신대철 시집을 보고 희망을 얻었던 적이 잇습니다. 첫 시집과 둘째 시집 사이가 십수년이라서요.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쓴다!! 이런 안도감을 주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