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얼굴

나뭇잎이 비바람에 겹겹이 풀린다 비 내릴 때면 나무

는 초록 그늘 안쪽으로 얼굴을 만들어 넣었다 여러 장의

나뭇잎이 겹쳐 만드는 얼굴, 비바람에 풀렸다 고일 적마

다 다른 얼굴이 되었다 흘러가는 구름에 이름 하나씩 붙

여주듯 나뭇잎 얼굴, 그 얼굴에도 이름이 있다 나뭇잎 그

늘 깊숙이 숨은 이름을 찾아보면 눈 코 잎 바람에 풀린다

이미 세상에 없거나 떠나버린 것들, 젖은 나무가 새를 품

고 있었으니 목이 꺾여라 바라보는 눈 속으로 날아드는

새, 더 이상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찐 계란과 소금

고무신 거꾸로 신던 일곱 살 얼굴에 핀

버즘처럼

얼룩덜룩 단풍 드는 가을날이면

하루하루

창문 내다보는 일이

내 일의 전부

그리고

멀리 둔 친구를 그려보는 일

섬진강가 싫다는 처자 이끌고 유배가듯 내려가

출퇴근길 여울지는 물살 바라보며 뜸뜸이 소식 오는,

그해 첫봄 쌍계사 벚꽃 십릿길에

찐 계란 먹다 그만 울컥 목이 메였다지

소금단지로 난분분 떨어지는 벚꽃잎에

그야말로 꽃소금을 찍어먹으며 울고 말았다는,

그 소리에 친구들 가가대소 웃었지만

그 후로 알게 되었네 찐 계란에 소금 찍는 이유

짜디짠 소금이 없다면 눈물이라도 있어야 하니까

찝찔한 눈물마저 없으면 가슴에 얹힐 테니까

울지 마라, 사이다 한 고뿌와 같이 먹던 찐 계란과 소금

늘 감기를 달고 살던

얼굴에 흰 버즘이 분꽃처럼 떨어지는 소풍날이면

찐 계란과 같이 먹는 소금

지금 생각하면 그 짜고 그리운 시절

최영숙<모든 여자의 이름은>(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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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들을 두어 달 전에 올리려고 했는데, 세번이나 에러가 났습니다. 좌절해서 한동시창에 오는 게 안 뜸했죠.

해가 바뀌어 사년 전에 타계했군요.

아마 이 시집 전체를 언젠가는 다 올리지 싶습니다. 애초에 올리려고 한 시들은 이 시들이 아니었는데, 다시 보다 보니 소품 같은 이 시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냥 멍 하니 앉아 있다 보면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우연히 만들어지는 작은 시들. 이 시들은 그녀가 잡아낸 우연이었구요..(그런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