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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벽 세시의 사자 한 마리 외2편
  글쓴이 : 남진우     날짜 : 06-11-23 11:52     조회 : 8931    
 

세 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지금

목마른 사자 한 마리 내 방문 앞에 와 있다


어둠에 잠긴 사방

시계 똑딱리는 소리

잠자리에 누운 내 심장에 와 부딪치고

창 가득히 밀려온 밤하늘엔 별 하나 없다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


짧은 잠에서 깨어나 문득 눈을 뜬 깊은 밤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의 텅 빈 방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사자의 갈기가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타오르는 사자의 커다란 눈이 내 눈에 가득 차고

사나운 사자의 앞발이 내 목줄기를 짓누를 때

천둥처럼 전신에 와 부딪는

시계 똑닥거리는 소리


문을 열고 나가보면 어두운 복도 저편

막 사라지는 사자의 꼬리가 보인다




먼 산 먼 길


어린 시절 텅 빈 마루에서 홀로 잠이 들면

호랑이 한 마리 산에서 내려와 나를 물고갔다 한다

고요한 한낮 지나 서서히 해가 저물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면

호랭이한테 물려갔다 돌아온 게지

식구들은 웃으며 말하곤 했다


내가 잠이 든 다음

살그머니 수풀을 해치고 내려온 호랑이 한 마리

시내를 건너고 신작로를 가로지르고

비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살짝 열린 대문을 지나

햇살 눈부신 저편 마루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저으기 바라본 것일까


뜨거운 호랑이 아가리에 물린 채

몇 개의 산과 들을 뛰어넘는 동안에도

나의 깊은 잠은 끝없고

오직 지나가는 바람만이 귓가에 윙윙거릴 뿐

제 집 동굴에서도 여전히 잠만 자는 나를

호랑이는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혀로 핥아도 보았다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다시 돌려주기로 한 것일까


호랑이 입에 물려

집으로 오는 동안

화르르 져내리는 꽃잎 속에 아슴아슴 먼 길이 떠오르고

마악 대문을 열고 마실 나서는 어머니가

에구머니나 놀라 외치는 소리에 옛다 내던지고

호랑이는 다시 먼 산으로 가버린 것일까


지금도 잠이 들면

나를 데려가기 위해 호랑이의 나직한

발소리가 들린다 내 귓가를 맴도는 더운 숨결 내 몸에 와 닿는



저 석양


1

저녁

내 몸은 푸른 허기로 가득 찬다

바람의 비린내가 맡아지고

손가락 뼈마디에 와 걸리는 녹슨 석양빛이 만져지는 때

오래된 마당 구석 낡은 우물이 들어와 마을 한 켠을 차지한다


내 안에 기숙하던 아픔이 이리도 많아

오늘 이 저녁 만나는 모든 것들이

어두운 입을 벌리고 내 갈 길을 묻는다


2

한때 내 속에 살던 노래는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리고

나는 텅 빈 우물로 고요하다

푸른 물이 그립다고 간혹 되뇌어보지만

이제 누가 내 속에

제 얼굴을 비춰볼 것인가


춥고 어두운 내 몸속에

간혹 길 잃은 짐승이 빠져 한 줌 뼈로 변한다

내가 길들일 수 없는 길들이

저 먼 세상 어디론가 소리 없이 풀려나고

길의 끝

마른 번개 한줄기 달려가다 멈추는 곳


푸른 허기에 감싸인 채

나는 우물을 굽어본다

지팡이가 돌계단을 치는 소리 들리다 그치고

조금씩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3

아주 멀리서

다가오는 빛

날개 달린 짐승들이 일제히 깃을 터는

저녁의 우물 깊숙이

내려오는 빛

손에 받아

고개 숙이고 마셔보는 한 모금의 빛

아무 맛도 없이

내 몸을 푸르게 물들였다 사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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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준비 하는 중입니다. 방 치우는 중. 새 집에 가면 이 시집을 밤에 자기 전에 한동안 읽을 듯합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나왔고, 세벽 세시의 사자 한 마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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