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월1일, 월요일) 복숭아를 처음 보내드렸습니다.
얼마나 보내드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청하신 순서대로, 또 당일날 연락이 되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번 복숭아는 수확기에 비가 계속 내린 탓에 수확기를 놓쳐 낭패를 보았습니다.
복숭아 또한 다른 과일처럼 비를 맞으면 당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가 그친 후 또 이틀 동안 햇볕을 쬐인 후 수확을 했더니 복숭아 대부분이 물러 있었습니다. 
병이 온 복숭아도 보였습니다.
어제, 무른 복숭아는 즙을 내고 성한 복숭아만 가리고 가려 어제 보내드리고 나서
어젯밤 잠을 설쳤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는 어제 몇 알 남겨놓은 복숭아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어제는 괜찮아 보였는데 멍이 생긴 복숭아가 두어개 보였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복숭아의 아주 작은 멍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오늘 풀씨님들이 받으실 복숭아에 멍이 많이 들었으면 어쩌나, 마음이 많이 조립니다.
받으시고 상태가 좋지 않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수확시기에 비가 내렸으니 복숭아맛도 지난해만 못할 겁니다.
물론 저희 정성과 기술이 모자란 탓이 제일 크겠지요.
지난 세월, 저는 풀씨님들을 비롯한 도시 소비자들과 농사를 함께 짓는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몸이 고단해도 저희 사이트를 통해 농사 이야기를 자주 나눈 것도 소비자와 함께 짓는 농사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지요.
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그이들은 비가 오거나 가뭄이 들면 당신 일처럼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돈을 내고 저희 복숭아를 받으시니, 맛난 복숭아를 바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비와 같이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풀씨님들의 더 깊은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맛으로 따지자면, 복숭아 맛이야 거기에서 거기이겠지요.
저희 복숭아가 맛났다고 느끼셨다면 마음으로 드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복숭아를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고, 다만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치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비가 내려 맛이 떨어진 복숭아를 다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비단 복숭아 뿐만 아니라, 농작물이 다 그렇지요.
못 생겼다고 버리고, 작다고 버리고, 맛없다고 버리면, 화학비료와 농약이 점점 더 그악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비 소식이 또 있는 오늘, 아침부터 마을이 시끄럽습니다.
비 오기 전에 농약을 치느라고 소독통에 물을 대는 경운기 소리이지요.

어제, 과수원에서 울고 있는 저를 발견한 남편이 처음으로 "유기농 하지 말까?" 그랬습니다.
그 말에 제 마음이 또 툭 떨어졌습니다.
어제는 "유기농 하지 말까?" 였지만, "농사 짓지 말까?" 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들어왔는데, 여기까지 오고 말았네요.

새벽에 논둑 달리기를 했습니다.
그제 어제 원두막에서 열 시간 넘게 무릎 끓고 앉아 복숭아를 가리고 포장작업을 했더니, 무릎에 멍이 들고 잘 펴지질 않더군요.
그렇게 해서 건진 복숭아가 겨우 열 상자 남짓입니다.
물 먹은 솜과 같은 몸으로 그래도 달리기를 했습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안개를 뚫고 산 위 하늘의 구름을 뚫고 방사선으로 힘차게 나오는 햇살을 딱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환해지면서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서울 살 때, 직장에서의 일로 고민하고 있는 저를 보고 어머니가 그러셨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많은 자식들 공부 시키기 위해 사방으로 돈을 꾸러 다니던 때, 밤이면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기 어려우셨답니다. 
"그런데, 분석아, 아침이 되면 그 걱정이 싹 없어지고 기운이 나는 거야. 오늘도 잘 살아야지! 그래지는 거야."
어머니의 힘이 제게도 조금이나마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