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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는 무엇인가? 6
  글쓴이 : 금진항     날짜 : 13-10-20 09:31     조회 : 4190    
일본어 '오타쿠'의 원래 의미는 상대방을 가볍게 높혀 부르는 말이다. 한글로는 '분' '님' 정도일 것이다.
내가 일본에 살았던 30년전에도 꽤 유행하던 말이었는데, 이번의 일본 여행에서 그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30년전의 오타쿠는 더욱 확실한 존재로 급부상되어 있었고, 그 당시 사회현상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이제는 일본의 사회계층으로까지 발전하여 무너지는 일본 자본주의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불려질 정도이다.
 
첫째 딸을 임신하고 아내와 나는 주말이면 동경의 하라주꾸에 자주 놀러다녔는데, 그곳은 일본 원조 코스프레족들의 중심지였다. 아내와 나는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드디어 딸 아이를 출산하고 15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때 뱃 속에 있던 딸 아이가 코스프레 공연을 위해 서울로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하라주꾸의 코스프레를 내 고향 시골의 중학생 소녀가 재현을 하다니. 도무지 어안이 벙벙해서 어쩔 줄 몰랐다. 딸 아이는 기여코 코스프레 옷을 주문해서 부리나케 서울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혹시, 배 속의 아이가 하루주꾸를 태교로 배웠던 것이 아닐까? 도무지, 고향집은 딸 아이가 그런 문화를 접할수도 없는 지방 소도시의 허름한 인간들이 사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새로운 문화라고는 관심도 없는 부모를 둔 딸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하루주꾸의 코스프레를 아내와 나는 이상한 족속들의 기이한 짓이라고 치부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내 딸 아이가 왜?  아내와 내가 이해할 수 범위는 겨우 태교 정도였다.
다행히(?) 그 이후 딸 아이의 관심은 무대 연출로 옮겨가더니 영화에 미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뒷전으로 미루고 영화에 빠졌다. 나는, 그런 딸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어느 날인가, 딸 아이 고 3 때, 나는 전교조 선생님들과 인권영화제를 관람하고 있었다.
 
"아빠!"
 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딸 아이가 있었다. 학교는 안가고  딸아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영화제를 마치고 영화제 실무자들과 회식자리가 있었는데, 그 때 딸아이의 얘기가 나왔다. 그 많은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 종일 관람한 유일한 사람이  딸 아이라는 거였다.
그 후, 딸 아이는 영화과에 입학을 했고, 입학한 첫 해에 영화과에서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딸 아이였다. 중고등학교 내내 내가 딸 아이에게 유일하게 강요한 것이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분량과 제목을 지정해주고 막무가내로 글쓰기를 시켰다. 나의 교육 방법은 엽기적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다고 햇고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고, 심지어 고 3 때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영화과에 입학하고 작문시간에 딸 아이는 교수의 호출을 받았다. 교수는 딸아이의 작문을 인터넷에서 복사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억울한 딸 아이는 항의했으나 교수는 믿지 않았다. 몇 달 후에 겨우 오해가 풀렸고 그 이후 딸 아이는 괴물이 되었다.
2학년을 마치고 딸 아이는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자신이 태어난 그곳 일본 동경으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후쿠오카의 지진과 방사능으로 딸 아이는 자신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남겨둔채 도망쳐 오고 말았던 것이다.
 
딸 아이가 오타쿠족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타쿠는 자본주의 시장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형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물신숭배를 예견했던 맑스에게 유일하게 인정을 해 줄 수 있는 지점이었다. 19세기 상품 생산에 동원되었던 프롤레타리아의 역할은 복지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사라졌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을 창조했던 부루조아로 변신하면서 자신의  역할이 상품 생산의 노예에서 소비를 주도하는 좀비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본주의 천국 일본에서 오타쿠로 탄생한 것이다.
상품에 대한 집착은 일본의 성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변태들의 천국 일본에서 페티시즘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한히 높다. 아마, 오타쿠의 성생활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생물이 아닌 물질에 대한 집착은 자본주의가 상품을 소비자를 현혹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상품이라는 무생물을 마치 살아있는 생물 이상으로 혼돈시킨 것이다.
딸 아이에게 코스푸레는 오타쿠로 가기 전의  전초전이었다. 다행히 그 속에서 탈출 시킨 것은 글쓰기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유럽 절대왕조 중상주의 국가 시절 왕의 도우미로 탄생한 부루조아가, 망해가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오타쿠라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품과 국가의 간섭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선택으로서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오타쿠들은 소비자로서 일본시장을 주도하고 심지어 새로운 생산자로서의 역할까지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세상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발적 실직자로서 운둔형 인간형인 히끼꼬모리들에게 오타쿠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살았던 30 년전에 이미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복지 국가를 실천하고 있었다. 유학생이었던 나에게도 일본 복지 혜택이 부여되었다. 아이를 낳으니 일본돈 11만엥이 구청에서 나왔고 병원비고 무료였고 구청에서 아이 출산 삼개월 전후 내내 우유를 배달해주었다.
 
복지국가의 특성은 과도한 세금과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이다. 엄격하고도 섬세한 법 집행으로도 대변된다. 개인들은 국가의 틀 속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유토피아는 국가와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시장 뿐이다. 그것이 오타쿠인 것이다.
일본은 지구 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집단성이 강한 나라였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메이지 유신 전의 막부 정부에서도 건재했다. 우리나라의 道에 해당하는 행정기구가 일본의 縣이다. 그런데, 그 현을 부르는 다른 말이 일본어에 있다. 구니(國)이다. 일본은 구니의 천국이다. 각 지방은 전부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일본의 전국 시대는 그래서 구기간의 전쟁이었다. 각 자치정부간의 치열한 전투를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평정하고 무신정권을 확립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통일은 하였지만 각 구니의 경제적 자립은 여전했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이토록 역사가 깊었고 인민들의 생활 시스템에 뿌리내려 있었다. 일본의  축제인 마쯔리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탄생한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처럼 행정기관이 주도하고 주민들이 동원되는 엉터리 축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 일본의 전통이 자본주의에 의해서 부서지고 있었다. 집단은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개인만 남아 있었다. 국가는 집단 보다도 개인을 관리하기가 수월하다. 집단은 오히려 국가에게는 적이 된다. 집단을 철저히 때려부셔 힘없는 개인을 관리해야 법과 제도를 확실하게 실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들은 자신들이 때려부셨던 공동체를 다시 살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방자치라는 행정조직이다. 국가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제도에 의해 사라진 자발적인 경제시스템을 다시 법과 제도로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아이 살리려는 것 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다.
법과 제도라는 칼날을 치우는 것이아말로 진정 공동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공동체는 자발적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국가는 이미 인민들을 타발적인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인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타의에 움직이는 노예가 된 것이다. 국가의 간섭에 길들여지고 국가가 없다면 불안해하고 있다. 그것이 애국심이라는 추상적인 정신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의 또 한가지 정신병이 물신숭배의 오타쿠가 된 것이다.
 
그래서 히끼꼬모리에게 오타쿠가 되라는 지식인들이야 말로 자본주의 복지국가의 파시즘의 친위대인 것이다.
다만, 일본에는 각 구니마다 구니를 지배했던 아름다운 城들이 남아있다. 일본의 수많은 성들은 각 구니를 지배했던 영주들이 살았던 흔적들인 동시에 막부 시절의 평화로운 시절에 구니의 무사들은 스스로 행정가나 기술자나 상인들이 되어 인민들의 자발적인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 하급 무사들 중에 중앙정치에 차별을 받고 불만이 많았던 사쯔마 지역의 무사들이 드디어 난을 일으켜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사쯔마의 하급 무사들 역시 상업과 수공업을 장악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유럽의 부루지아를 흉내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동해를 건너기 전 도시마 구니의 마쯔에 성을 바라보면서 인민들을 독려해 그들의 삶을 자발적인 생활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무사들과 근면하고 검소했던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장면에 오버랩 된 것은 불행하게도 오타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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