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명한 드라마 pd가 자살했다. 아마, 그가 죽을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몇 년전, 재능있었던 젊은 여자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자취방에서 죽은 지 며칠만에 발견되었다.
내 딸아이가 그쪽 계통에서 일을 하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이 죽었던 날 나는 뉴스를 보고 술 한잔을 하고 딸 아이에게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이렇게 얘기했다.
"주희야, 너무 힘들게 하지마, 너무 애 쓰지도 마, 영화 아니라도 먹고 살게 많아, 편하게 살아, 하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내려와, 아빠랑 같이 살자...."
이런 말을 하고나서 전화를 끊고, 나는 한 동안 울먹였었다. 두 사람의 죽음이 안타깝기도 했고, 딸아이의 미래와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아비의 마음으로도 도와줄 수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더욱 슬펐던 것은, 영화계의 그런 살벌한 현실보다, 왜 그 사람들은 홀로 고독하게 죽었어야 하는가였다.
젊은 시나리오 작가는 홀로 살았지만, 유명한 pd는 가족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홀로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해고된 쌍용 노동자들이 여러 명도 자살을 했다. 그들 역시 가족이 있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동차 라인에서 일을 못하면 비록 돈은 적지만 다른 노가다를 했으면 되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죽었다.
요즘, 홀로 사망을 하여 오랜시간 후에 발견이 되는 고독사가 늘어났다. 심지어, 연고자가 없어 고독사한 사람들을 따로 모시는 장지까지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고독하게 되었을까? 가족이 있으나 없으나 일이 있으나 없으나, 고독하다는 것이다.
텔레비젼 화면에서는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지겨운 연예인들이 나와서 잡담으로 깔깔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호들갑을 떨고, 한편으로는 너무 처먹어서 살 빼는데 열중하고, 그러고도 오래 살려고 건강음식 찾아먹고.............그러면서도 외롭게 홀로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를 이렇게 쓸쓸하게 죽어가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홀로 된 사람들이 말할 것도 없지만, 설사 가족이 있거나 친구가 많더라도 외로운 것은 서로간에 마음을 열어놓지 못하고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닐까? 아내에게 아비에게 친구에게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풀어놓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고통을 온통 홀로 짊어지고 죽어가는 것이다.
영화계나 노동계나 구조적 문제점은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지만, 그것 보다도 더 큰 문제는 우리는 고독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다 두고도 외로운 사람들! 요즘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다해도 입에 풀칠이라도 할려면 온갖 일들은 널려있다. 경제적인면에서 그렇게 죽음을 택한다면, 오히려 과거 사회에서 자살율이 더 높았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고독한 걸까?
내가 살고 있는 작은 항구에는, 수십년째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커다란 묵호항의 경우에는, 외지에서 돈 벌러 온 사람들이 많지만, 여기 금진항은 대부분 여기 원주민들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커왔던 사람들이어서 집안 구석 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 대부분 같은 일에 종사를 한다. 농촌은 협업의 전통인 두레의 공산 방식이 전부 사라졌지만, 이곳 어촌에서는 일의 특성상 같이 협조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일하고 같이 밥먹고 같이 놀고 같이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묵호항도 역시 금진항 처럼 같은 고향 사람들은 아니지만 수 십년 같은 바다에서 공통의 일을 협업을 하면서 살아왔기에 금진항 사람들과 비슷한 처지다.
도시의 사람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더라도 잠을 잘 때는 떨어지고, 같은 마을에 살더라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가옥의 구조도 아파트라 서로 소통할 구조를 방해하고 있다. 오히려 층간 소음 문제 같은 일로 이웃과 싸우면서 지내기가 다반사다.
이곳은 농어천이 같이 붙어있는 곳이라, 농촌의 상황은 사뭍 다르다. 농촌은 이미 곧동체가 무너진지 오래다. 같이 일하고 같이 밥을 먹던 시대가 아니다. 도시 처럼 외로운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는 노인네도 가끔은 나타나나고 고독사 노인네도 생긴다.
공동체의 의미는, 같이 살아가면서 같은 경제적 시스템 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놀아야 한다. 그것은 현재 한국 농촌과 어촌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관계이어야 한다.
범죄가 발생되는 것은, 물론 개인의 품성도 있지만, 사회적 경제적 구조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돌아갈 고향인 공동체가 사라진 것이다. 자신이 돌아갈 공동체가 없다면 그것은 막다른 길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고독의 진정한 이유인 것이다. 혹시 돌아갈 고향이 있더라도 이미 그곳은 예전의 고향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진정한 고향을 마련해 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딸아이의 미래에 대해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항상 언제든지 내려와 아빠랑 같이 살자고 한다. 가능하면 열심히 일하라는 말보다 대충 대충 일하라고 딸아이 힘이나 빼놓는다.
이미 도시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있는 좀비들의 소굴로 전락하고 있다.
예전에 많이 불렀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없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고향을 찾아야 한다. 그곳이 바로 가난하지만 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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