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영성

                                                                                              우리농풀   김종성

 아직 먼동이 트기 전, 긴 수도복을 뒤집어 쓰고 앞 사람 발소리를 들으며 성당으로 향한다. 희미한 불빛만이 일렁일 뿐 긴 침묵속에 간혹 잔기침 소리만이 들린다.

 천년의 역사 속에 흐르는 수도승들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기도를 마치고 또다시 어둠속으로 향하는 수도자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로 향한다. 주방일을 맡은 수도승은 주방으로, 청소일을 맡은 수도승은 자신의 일터로 찾아든다.

 신호로 알려주는 종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자욱한 아침안개와 더불어 침묵만이 이들을 감싸고 있다.

 침묵과 노동, 기도를 통해서 세상이 짊어진 죄를 대신해서 세상을 향한 속죄를 대신한다.   속죄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속량한 것으로써 당신을 성화시킨 것처럼 수도승들도 자신들의 일상을 통해서 성화를 향한다.

 이 글을 부탁받고 먼 이국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오래 살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은지 5년이 된 지인이 있다. 며칠 전 이곳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말 문을 닫았다.

  ‘농사일이 참으로 힘이 든다. 매일 매일 시작하는 일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회지에서 살면서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죄를 짖고 살기 때문에 시골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이 힘들게 일을 하는것이다. 더 나이 먹기전에 진작 들어왔어야 했는데...’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을 성화시키는 귀농 농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돌아오는 길의 내 말문을 막아 버린 것이다. 방문한 그날 비가 왔는데, 그래서 참깨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것은 하느님께서 노동을 허락하시고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기에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그렇게 하늘에 순명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세상 이치와는 다른 이치에 순응한다는 말 속에서 농민들의 순수한 영성을 보게 된다.

 아침 출근시간에 다급한 전화가 왔다. 다섯살배기 아이를 전주 할머니댁에 맡기고 서울 근교에서 맞벌이를 하는 직원이었다. 전날 저녁, 아이가 국물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서 밤새 전주에 다녀왔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에 이야기 하고 다시 가봐야 한다는 전화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손이 떨려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과, 먹고 살자고 자식과 멀리 떨어져서 쥐 꼬리만한 월급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 그 젊은이를 생각해 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젊은이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을 생각들, ‘조금만 참고 견디자, 허튼짓 하지 않고 올바른 가치관 속에 남들 속이지 않고 땀 흘리면 무슨 수가 있겠지’ 라고 두 부부가 손 잡고 다짐했을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숙여지고 내 가슴이 숙연해졌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는 일상적인 하루 하루 생활 속에 생명을 키워내고 가꾸는 것이 노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고통 속에서, 애환과 깊은 고뇌 속에서 피어나는 영혼은 삶을 키워내고 영성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 젊은이가 자신의 무거운 짐을 너무 힘겨워하고 벗어 던져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인내하고 감내하면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노동을 통해 가꾸어가는 종교적 심성은 구도자들에게는 전인적인 성화로 이끄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 젊은이가 예수를 모르지만 자신의 삶의 무게가 너무나 크고 고통스럽겠지만 그 고통을 노동으로부터 탈출구를 찾을 때 그의 영성은 새로운 형태로 피어날 것이다.

 성서를 보면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은 땀을 흘리며 일할 것을 알려주신다. 노동의 시원이 여기에서 출발하기에 노동을 신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은 그래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첫 번째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자기 계획에 따라 변화시키고 이용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성장과 가족의 삶을 책임지기도 하며 노동을 통해 수반되는 수고와 인내와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가꾸고 일으켜 세워 인간의 본 모습인 하느님을 닮아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노동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고 에덴동산에서 세상으로 보낸 목적을 실현해 내는 행위이며 그래서 노동이 신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라는 성서의 말씀과 수도승의 대부라고 말하는 베네딕트 수도승(540년)의 가르침은 "노동하는 것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라는 말씀으로 노동과 영성의 필연적 관계을 주장하셨다. 우리가 영성을 말하면서 조용한 수도원이나 교회의 대중 예배에서 노동을 배제한 성령만을 찾는다는 것은 삶과 영성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틴 루터는 내적질병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노동을 강조하였다. 일용한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밭을 일구고 필요한 만큼만 거둬들이는 스님들을 보면서 노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지난 봄부터 우리밀 급식이란 회사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급식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맞벌이 부부들의 고통과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학생들을 보면서 뜻 있는 학부모들이 지자체의 조례제정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은 전국의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국민의 세금으로 걷은 돈으로 급식을 실시하게 되었다.

 물건(식품)이 집중이 되다보니 돈이 몰리게 되었고 이 틈에 먹거리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뛰어들면서 학교 급식이 원래 가졌던 순수한 의미는 사라지고 아이들이 영양이 결핍된 식사를 제공받는다든지 혹은 첨가물로 범벅이 된 음식을 제공받는다든지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또한 각 교육청에서는 학교 급식을 공급하는 업체들에게 최저가 입찰제를 도입하다보니 엉터리 식품이, 무늬만 국산으로 둔갑하여 제공되기도 한다. 또한 각 업체들은 저가 입찰을 하다 보니 양식있는 업체들은 사업을 포기하기도 하고 일부는 무리한 입찰경쟁으로 부도가 나서 결국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앞에서 나는 영성이 깃든 우리밀 빵을 만들자고 말하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빵에는 친환경매장에서 구입해서 먹는 빵과는 다른 제품을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글루텐을 넣지 않고 만들다 보니 어려움이 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고수해 보고 싶다. 돈을 쫓아가는 것 보다 우리 빵을 먹는 학생들을 향하고 싶다.

 우리는 만두를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만드는 만두속에는 타 제품과는 달리 참기름 한 방울, 당면, 부추 한 가닥 까지 모두 국산으로 만든다. 그러나 타 제품을 보면 만두피는 우리밀로 만들지만 여러 가지 첨가물이 혼합되어있다.

얼마 전 경기도 어느 학교에서 만두에 대한 항의가 들어왔다. 만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방문해 보니 우리 상품이 아닌 다른 회사 상품이었다. 저희 상품과 문제가 되었던 상품을 비교해 보여주었더니 영양사 선생님께서 너무나 놀래셨다.

 노동과  영성.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앉아 하루의 노고와 땀방울을 바치며 하루를 정리하는 구도자들,

비가 오면 씨를 뿌리고 바람이 불면 덮어주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의 죄와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고독스럽게 농사를 선택한 수많은 농민들.

오늘도 노동에 지친 육신을 끌고 들어와 하루의 노고를 부부간에 오손도손 나누며 노동의 고통을 녹여내는 그 속에 생(生)이 새롭게 출발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 속에서 속이지 않고 숨기지 않고 영혼을 팔지 않고 식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나와 더불어 함께하는 우리 식구들이 함께 꿈을 꾸어보길 기대한다.

우리회사는 일요일이 없다. 월요일 아침에 아이들에게 먹거리가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 짐을 실어 보내야 한다.

제품은 공장에서 나올 때 새 것으로 나오지만 사람은 공장에서 나올 때 병들어 나온다는 벨기에의 까르덴 추기경의 말씀처럼 우리 회사에서도 출고되는 식품은 좋은 식품이 출고되지만 그 제품을 출고하기 위해 애쓰는 직원들은 초죽음이 되어 나온다.

이러한 노동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노동을 기피하고 이런 노동을 신성하다고 말하면 비웃는다. 이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우리 회사는 모두 내국인이다) 그러면서 노동현장은 피폐해지고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은 영혼이 숨쉬지 못한다.

우리 식구(직원)들에게 영혼이 숨쉬는 제품을 만들자고 말한다. 일의 조건이 빈약하고 어렵지만 우리가 만든 제품을 아이들이 먹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저와 함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메마르지 않는 꿈을,

나의 노동은 우리 아이들에게 먹여지는 먹거리에 영혼이 숨쉬기 위해 만들어낸 식품에 노고와 애환이 봉헌되어지길 기대해 보는 것이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오빠에게 골수를 수혈한 소녀가 있었다. 차츰 차츰 병이 호전되는 오빠의 침상옆에서 시무룩해있는 소녀를 보고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소녀는 “엄마, 나 언제 죽어” 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죽는줄 알면서도 기꺼히 나눔을 실천한 소녀의 마음에 마음을 얹어보고 싶다.

 * 우리농풀 김종성님은 우리농촌살리기공동네트워크 대표, 우리밀급식 대표를 맡아서 건강한 먹거리문화 확산을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