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상처 품은 비무장지대는 녹색평화의 터전이어야…

 146종의 희귀동식물, 67종의 멸종위기보호야생물

 선사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문화유적

지구상에 이런 댐이 또 있을까. 물을 채우지 않을 목적으로 만든 댐,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과 화천군 화천읍의 북한강 상류에 있는 평화의 댐이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24km 북쪽 상류에 임남댐(금강산댐)이 있다. 평화의 댐과 임남댐 사이에는 비무장 지대가 가로지르고 있다.

북한이 1986년에 착공하여 2003년에 완공한 임남댐은 총저수량이 26억 2천만톤이다. 남한의 전두환 정권은 이 댐이 수공용으로 쓰이면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며 국민 성금을 모아 평화의 댐을 만들었다. 87년 2월 착공하여 89년 12월에 완공한 평화의 댐은 87년 12월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쳐 노태우 정권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야권에서는 이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거센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댐을 댐정상 높이 해발 225m에서 해발 270m로 더 높이 쌓은 것은 김대중 정권 때 시작되었다. 2002년에 위성사진을 통한 분석 결과 토사를 쌓아 만든 사력댐인 임남댐이 큰 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2002년 9월 2단계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2006년 6월에 완공하였다. 총저수량은 26억3천만톤이다. 북한의 임남댐 건설 이후 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은 12%가 줄어들었다 한다.

평화의 댐에서 서북쪽 산줄기 너머로 솟아오른 한 봉우리가 보였다. 해발 1004m의 백암산이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한명희는 이곳에서 비목을 찾아냈다. 궁노루는 천연기념물 216호인 사향노루를 말하는데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사향노루가 산양과 함께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연암이 청나라 땅에 들어선 이후 그에게서 청심환을 얻으려는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가짜가 많은 중국에서는 사향가루가 들어간 조선의 우황청심환을 진본으로 여겨 열광했던 것이다. 포연과 사향을 동시에 간직한 채 백암산은 임남댐과 평화의 댐을 동시에 내려다보며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재래식 전쟁 박물관 양구

정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강원도 양구군 비무장지대 부근은 한국전쟁 동안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도솔산 전투, 피의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백석산 전투, 가칠봉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크리스마스 전투 등 피의 한국전쟁사가 골짜기마다 새겨져 있다.

1951년 9월 미국의 한 종군 기자가 이곳 부대를 방문했을 때 “가슴이 찟어지는 듯 해”라며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단장의 능선(Heart Break Ridgeline)’이라며 보도한 데서 이름이 붙은 ‘단장의 능선’. 1951년 9월 18일부터 약 1개월간 피아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10월 15일 미군이 931고지를 최종 점령하며 종료되었다.

헬리콥터 작전이 사상 최초로 도입되었다는 이 전투에 미 제2사단은 22만 9천여발의 포사격과 항공기 출격 842회, 폭탄투하 250톤, 마지막 날에는 한국군과 프랑스군과 수류탄과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한 육탄전을 벌였다 한다.

프랑스는 한국전쟁 당시 1개 대대 약 3,400명의 전투병력이 참전하여 미 2사단에 배속되었는데 전사 269, 부상 1,350, 포로 12, 실종 7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가운데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만 260명이 전사하였다. 이 전투를 잊지 않기 위해 프랑스는 매년 10월 파리 개선문 앞에서 ‘단장의 능선 행사’를 연다고 한다. 2007년 9월 22일 단장의 능선에서는 한 프랑스인 노병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는 자신의 유골을 단장의 능선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다.

세계 20개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국제전쟁 한국전쟁, 이곳 재래식 전쟁의 박물관 양구에 다시 모여 해원굿을 펼칠 날을 상상해보았다.

연어가 회귀하는 남강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까지 이어가는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한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땅 사랑은 편파적이다. 동쪽으로는 강이라 부를만한 물줄기를 터주지 않은 것이다. 남대천이니 오십천이니 하면서 모두 ‘천’자 돌림인데 홀로 ‘강’이라 불리는 물줄기가 남강이다.

남강은 금강산 남쪽의 무산(1,319m)에서 향로봉 산줄기를 가르며 강원도 고성군에서 가장 넓은 수동면을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드는 200여리의 물줄기이다. 수동면 사비리가 고향인 수동면민회 이부익(73) 회장은 기억을 더듬는다.

“참 살기 좋은 곳이야. 물 맑지, 산 깊지, 농사 잘되지. 부족한 것이 없었어. 봄이 오면 강이 눈 녹은 물로 홍수를 이루곤 했지. 눈이 한번 왔다 하면 한 길을 넘었어. 한식 무렵이면 눈 녹은 물에 홍수 진 강을 타고 동해에서 황어, 은어가 올라와. 여름이면 송어와 칠성장어가 올라오고 서리 내릴 무렵이면 연어가 올라오고, 은어는 연어떼를 헤치고 바다로 내려가곤 했지”

봄이면 삼재령을 넘어 인제, 양구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견디다 못해 품을 팔러 왔고 일손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지만 수동면 사람들은 그들이 다시 삼재령을 넘어갈 때에 손에 쌀 자루를 들려 보냈다 한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강은 철저한 분단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나라가 갈리고 강원도가 갈리고 고성군이 갈리고 수동면이 갈리고 이 회장의 고향인 사비리도 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렸다.

이곳 남강을 내려다보는 한 부대에 병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시퍼런 강에는 어른 허벅다리만 한 물고기가 치닫고, 머리는 염소같고 엉덩이는 말같은 동물 말염소가 뛰놀며 서어나무 숲에는 장수하늘소가 산다”는 것이었다.

1985년 7월 그 전설을 찾아 학술조사단이 산맥을 넘어갔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바위 벼랑을 잽싸게 건너 뛰는 산양을 보고 어느 병사가 “말염소다”라며 소리쳤다.

1997년 4월 이들은 다시 향로봉 산맥을 넘어 남강가로 갔다. ‘연어의 꿈잔치’. 철책선 밑으로 굽이치는 남강에 연어의 치어를 방류한 것이다. 이후 남강은 해마다 연어가 돌아오는 강이 됐다. 이곳 남강가의 철책을 걷어내고 사람이들이 다시 연어랑 은어랑 맞으며 오순도순 모여 살날은 언제일까. 양구군 해안면 을지전망대에 올라 남강 쪽을 바라보았다. 안내하는 병사로부터 사진을 찍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이곳에서도 귀아프게 들어야 했다. 사진 한 장도 찍어내갈 수 없는 철저한 통제구역이 비무장지대이다. 초소의 병사들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것을 색출해내기 위해 경계의 눈길을 떼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지대

사단법인 ‘한국 DMZ 연구소’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관리 이용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연구소는 DMZ의 가치를 △세계 유일의 특이한 생태계 및 생태경관 △보존된 저습지, 늪지 등의 영향으로 인한 생물다양성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 문화자원 분포 등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른 추진 전략으로 한반도 평화지대로 구축하고 자원을 남북 공동으로 이용, 관리하며 세계적 수준의 관광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비무장지대에는 146종의 희귀동식물, 67종의 멸종위기보호야생물을 포함하여 2,716종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국가지정문화재 14점, 지방문화재 20점, 문화재자료 13점, 등록문화재 13점, 관방유적 221개소(산성 67, 평지성 15, 봉수터 57, 기타 82)가 있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질적 양적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작된 육로관광에 이어 특구개발 후속조치가 무분별하게 추진될 경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지난 반세기동안에 걸쳐 스스로 복원된 생태계는 단기간에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이 재앙을 맞게 될 수 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품은 비무장지대는 녹색평화의 터전이어야 한다.<비무장지대에 상을 드리며 풀꽃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