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호사비오리 출현과 함께 떠오르는 풀꽃세상의 생각

반가움은 잠시, 우려는 깊어라

2000년 11월초 지리산에 생존하고 있는 반달곰이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이 사실이 비밀리에 편집되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1월 29일 MBC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방송사쪽의 말로는 반달곰 취재를 위해 3년여 동안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번에 나타난 반달곰은 지난 1983년 설악산에서 야생 반달곰 한 마리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숨진 이후 17년만에 확인된 것이라고 합니다. 뉴스 첫 기사로 지리산의 반달곰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에는 특종을 전하는 흥분이 배어 있었고, ‘고부싸움’이라 속칭하던 미대륙이나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지리한 정쟁(政爭)에 지루해 하던 시민들의 눈에 반달곰 소식은 신선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잇달아 환경단체들의 성명서가 발표되었습니다. 풀꽃세상 또한 마침 한 라디오방송사(불교방송)의 환경캠페인 요청에 따라 일주일에 걸쳐 반달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리산의 물봉선에게 풀꽃상을 드린 우리는 반달곰 출현을 다만 반갑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12월12일께에 보도된 지리산 계류의 호사비오리 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반달곰이나 호사비오리 출현이 뉴스가 되지 않는 세상을 열망합니다.

이미 종은 멸종된 상태이고 단지 개체수만 네댓 마리 남아 있다는 반달곰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비킨강 이만강, 우리나라의 백두산 등지에서만 번식하며 전세계를 통하여 1천여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호사비오리도 그 생명의 존속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출현을 다만 경제가치로만 파악하는 붉게 충혈된 밀렵꾼의 눈을 떠올리라치면, 반달곰 서식지 부근에서 함께 발견되었다는 올무와 덫을 떠올리라치면, 우리의 우려는 깊어지다 못해 참담해지기만 합니다. 경제가치로만 파악되는 반달곰의 시장(市場)은 바로 우리 시대이고, 우리의 야만적인 보신문화(?)에 그 시장논리가 바탕하고 있습니다.

풀꽃세상은 물봉선이나 반달곰이나 호사비오리나 다같은 생명공동체로서, 하나의 생물상으로 깊이 얽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반달곰과 호사비오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네 살림살이를 다시 되돌아보라는 준엄한 경종의 메시지는 아닐까 싶습니다. 방금 물봉선에게 풀꽃상을 드린 풀꽃세상은 그들 생명공동체 출현에 아주 짧은 반가움, 그리고 길고도 무거운 우려를 표합니다. 우리의 우려는 곧 그들이 우리 세대를 뛰어넘어, 죽어 천박해진 이 땅에 ‘야생의 기운’을 회복시켜 주기를 바라는 열망에 닿아 있습니다.

풀꽃세상은 반달곰이나 그들의 출현을 경제가치로만 파악하는 충혈된 밀렵꾼의 덫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가까스로 나타난 호사비오리가 공명심이 앞서는 조류학자로부터 자유롭기를 또한 우리는 바랍니다. 그들이 댐건설 소동으로부터 벗어나, 어머니 지리산의 품에서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풀꽃세상은 바랍니다.　

반달곰 출현에 즈음하여 따로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은 풀꽃세상은 마침 불교방송(BBS FM 101.9MHz)의 환경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12월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 동안 오후 6시15분 1분간, 정상명 대표의 목소리로 아래의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지리산의 모든 생명체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안녕하세요,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의 정상명입니다.

사향노루와 수달,

하늘다람쥐, 그리고 물봉선이 살고 있는 지리산은

야생동식물의 낙원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반달곰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벌써부터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곳곳에 파묻혀 있는 불법 밀렵도구들이

가슴반달곰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고,

식수댐과 지리산관광을 위한 일주도로 건설로

가슴반달곰은 이동로와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풀꽃세상에서 풀꽃상을 드린 지리산의 물봉선이나

반달곰을 지키는 일은 같은 일입니다.

야생동식물이 살 수 없는 자연이라면

사람의 생활도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야생동식물보호는

인간과 지구공동체를 살리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