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내게 남긴 체온
박그림(설악산 산양지기)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은 이웃지역이다. 이곳에서 불과 한달 만에 멸종 위기종인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 세 마리가 올무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눈을 감지도 못한 산양을 보며 돈을, 정력을, 보신을 떠올리는 인간들을 생각한다.
멸종 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만 하고 보호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기관, 허술한 법집행, 야생동물연구소조차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밀렵으로 은밀히 사라지는 산양의 수는 더욱 많을 것이다. 법이 있다 해도 엄정히 집행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밀렵을 하다 적발돼도 벌금 몇 푼 내고 풀려나 다시 밀렵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엄정하지 못한 법집행이 오히려 밀렵을 부추겨 온산을 올무로 뒤덮이게 했고, 밀렵꾼이 협박전화까지 해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순환 수렵제도 역시 야생동물의 씨를 말리고 있다. 서식지와 개체수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밀도조절을 위한 수렵이 가능한가. 부실한 관리감독 상황에서 순환 수렵제도는 공식적 밀렵일 뿐이다. 보호구역 지정, 일반인 출입통제 등 강력한 보호수단을 마련하고 순환 수렵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눈덮인 겨울산을 오를 때면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 눈 위에 찍힌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보는 일도 그 하나다. 그러나 기대는 늘 어긋나고 야생동물조차 살지 않는 쓸쓸하고 황량한 산을 바라볼 뿐이다.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통해서 전해오는 따뜻한 느낌은 언제 가슴에 담을 수 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