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5권

함께 읽고 싶은 글 2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로 유명한 주강현 선생님의 아래 글은 한 인문주의자의 특정 물고기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애정을 감추지 않고 있는 서사시, 『조기에 관한 명상』의 끝부분에 속하는 글입니다. ‘인문학의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인 조기 한 마리!,’ 라는 책의 요약을 거느리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가 결국은 인간의 존엄성에도 기여하게 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해주신 주강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풀꽃세상

제3의 변신, 황금비늘의 재생

주강현(민속학자)

생명의 그물
그 많던 조기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경기도 시화호로 갔다. 지금은 바다 아닌 호수가 되었다. 그 가운데에 누워 있는 우음도를 찾아갔다. 1980년대까지 우음도(牛音島)는 암수 두 마리 소가 드러누워 있는 형국이었다.
조그마한 섬의 정상 잡목숲에는 소당이라 부르는 마을 제당이 있었다. 3평 크기의 기와집에는 갈색말의 말고삐를 쥐고 벙거지를 쓴 임장군 그림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우음도의 임장군은 결코 무섭지가 않았다. 잔뜩 위엄을 갖추기는 했지만 갈색 조랑말이 희화적으로 그려져 반전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장군은 장군이기를 포기했는가, 아니면 장군이되 암시적으로나마 섬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정치적 견해를 드러낸 것인가.
분홍저고리에 족두리 쓰고 원삼에 초록 치마 입은 각시, 쪽비녀 꽂고 노랑저고리와 빨간치마를 입은 애기씨, 활을 든 대감, 패랭이만 쓰고 있는 마부시종도 같이 모셔졌다. 임장군은 도당할아버지, 대감은 소당할아버지, 애기는 소당애기씨, 각시는 소당할머니라고도 불렀다. 선착장으로 내려오자 왼쪽의 갯가에 당목이 서 있고 바위가 쌓인 곳에 군웅당이 있었다.
섬에서 뭍으로 나가는 갯가 쪽으로 개펄 한복판에 솟은 바위는 밀물 때에는 보이지 않고 썰물 때에만 보였다. 이를 일러 각시당이라 불렀다.[주;필자 현지 조사, 1997년 여름(경희대중앙박물관,『화성군의 역사와 민속』,1989).]
물론 당집은 사라졌다. 8,000여 년 동안 자연이 이룩한 개펄이 일시에 사라진 현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하여 예전에 배를 묶었던 선착장에 쭈그리고 앉았다.
35억 년 전, 원시바다에 처음으로 생명체란 것이 탄생하였다…….그리고 아득한 세월이 지난 뒤 그중 일부는 육지로 올라와 우리들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다 생명체들은 출현한 이래 줄곧 물 속에서 진화를 거듭하였고, 사람들은 뭍에 있는 생명체를 멸족시키면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랐다…….
나는 먹이사슬을 통해서 본 인간의 역사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물의 첫 연원은 물고기들 거의 대부분이 후퇴를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였다. 오로지 전진밖에 모르는 물고기는 인간과 물고기 간의 먹이사슬 관계가 매우 정상적인 상태에서 출발하였음을 의미한다. 물고기는 깊숙한 바다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 밖에 있다. 그물은 드리운다고 하더라도 물고기가 스스로 걸려들어야만 물고기 잡이가 성립된다. 물고기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바다 속에 자신의 몸을 은폐시키므로 오로지 ‘재수 없는 물고기’만이 걸려들 뿐이다. 물고기가 많았던 시절에는 재수 없이 걸려드는 물고기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이제 인간들은 얕게 그물을 쳐놓고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가령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북해에서는 청어잡이 유자망을 무려 1,600킬로미터씩 쳐놓고 청어를 잡아들였는데 그때의 그물 깊이는 수면에서 6미터 정도 떨어진 데 불과하여 물고기의 특성상 아래위로 이동하는 물고기는 그물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청어 자원은 늘 일정 정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어군 탐지기의 등장과 더불어 그물깊이를 어군에 맞추는 어업 기술이 발달하여 투입 노동량에 비해 어획량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또한 현명치 못한 어부들은 그물코를 꼼꼼하게 짬으로써 자연이 주는 ‘이자’로 살아갈 생각을 포기하고 ‘원금’을 뜯어먹는 우매한 짓을 범하였다.
배가 커지고 빨라져서 고기떼를 쫓아다니고 어군 탐지기를 통하여 고기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물을 쳐두고서 기다리는 수동적인 고기잡이에서 그물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바닥까지 훑어내는 ‘싹쓸이 어법’으로 변신하였다. 이로써 먹이사슬 관계가 급격히 깨지면서 현재와 같은 싹쓸이 어법으로도 고기잡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덕무의 글 중 소년어(少年魚)라는 대목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촘촘한 그물로 어린 물고기를 마구잡는 무모한 짓을 피하라는 선인의 가르침 때문 아니겠는가.

일본일사(日本逸史)에 이렇게 되어 있다.
차아천황(嵯峨天皇)의 칙서에, 수륙(水陸)에서 나는 이익은 공사(公私)가 다같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때없이 잡으면 번성하지 못한다. 지금 백성들이 소년어를 잡기 좋아하는데, 아무리 많이 잡아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소년어란 세 글자라 아주 새롭다. 그리고 이는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에 넣지 않는다는 뜻이다.(주;『청장관전서』제57권 양엽기)

이제는 ‘기르는 어법’이 등장하여 사람들은 오로지 인공으로 배양된 물고기만을 먹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물을 사용하여 극히 자연적인 어법으로 잡던 조기잡이는 조기 자체가 거의 사라짐으로써 어떤 과학적인 어법으로도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더 이상 ‘과학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옛 조기잡이가 인간에게 허용하였던 낮은 단계의 생산력이야말로 훨씬 과학적일 뿐더러 물고기와 인간 간의 평화협정에 기초한 먹이사슬의 호혜평등을 보장하는 과학적인 어법이 아닐까.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 인간들, 이른바 ‘만물의 영장’이 지닌 멸종 능력에 관하여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과학적 어법은 무슨 근거로 물고기를 멸종시켰을까. 우리는 왜 자연과의 상호 관계를 부인하고 다른 종을 멸종시킬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황해에서의 조기멸족사도 이같은 파괴 관계로부터 출발하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내가 시화호수 안의 우음도 임경업당집을 찾은 이유는 명백하였다. 나는 가방에서 한지를 꺼내서 바닥에 펴고 준비해 온 굴비 한 마리를 당집터 검불더미 앞에 바쳤다. 이윽고 제망석어가(祭亡石魚歌)란 제문을 지었다.

오호, 애재라!
조상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야 할 조기로서가 아니라
본인이 제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음을 애도하노라.
어느 애꿎은 학인(學人)이 있어
조기를 위한 애도의 노래를 부르나니!

소주를 한 잔 올렸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신생대의 황해는 원래 바다가 아니었다. 빙하가 녹아 흘러들어 바다가 되었다. 역사상 100번을 넘게 존재했던 숱한 빙하기 중에서도 2천만 년 전부터 시작된 신생대 4기의 네 번의 빙하기, 세 번의 간빙기를 황해바다는 증거하고 있다. 불과 8,000년 전에야 오늘날과 같은 해안선이 되었다. 그러나 황해 개펄의 운명은 20세기 마지막 사람들에 의하여 일거에 결단났다. 개펄이 펼쳐진 바닷가로 회유하던 조기의 운명도 일거에 결단났으니!

제3의 변신
바다로 나갔다.
바다는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개펄로 가기 위해 언덕빼기를 넘자 한가로운 오솔길 대신에 4차선 도로가 나타났고 광활한 개펄에 삐죽삐죽 들어선 철강공장 굴뚝과 야적장이 나타났다. 마을 솔밭 방풍림은 간 곳 없고 전봇대만 줄지은 바닷가에 솔밭갈비집이 생겨 그런대로 이름이나마 명맥을 이어주었다. 퍼덕이는 물고기를 부리던 포구의 방파제에는 흉물스럽게 콘크리트 더미만이 쌓였고 죽어버린 따개비만이 ‘여기가 예전에는 잘나가던 포구였소’라는 무언의 항거를 하는 듯했다. 변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옛바다에 나와 있었다. 웬일일까. 소금냄새나 어부의 소금땀에 절은 묘한 냄새, 해풍에 절은 아낙들의 구릿빛 얼굴 따위를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갖고 옛바다로 나왔는데 옛바다에서는 포클레인으로 갯땅을 들어내고 있었다. 포클레인 삽날이 수미터 깊이의 갯땅을 연신 들어올려 쌓아두었다. 그때였다. 흡사 금광의 광맥이 줄지어 나타나듯 흙갈색의 갯땅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황금빛이 암울한 대지를 밝히는 것이 아닌가.
비늘, 황금의 비늘!
차곡차곡 개펄 바닥에 쌓이고 쌓여서 어느덧 화석처럼 광맥으로 남았던 전설 속의 비늘…….
한두 해도 아니고 적어도 수천 년을 그렇게 비늘을 떨어뜨렸으니 황해 밑바닥은 온통 황금빛이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황금시대의 증거물이 늦게나마 나타날 수 있었을까. 다급하게 어류 생태학 책을 뒤져보았다.
바다밑의 용존산소가 거의 없는 혐기성 퇴적물이 침전되고, 쌓인 퇴적물이 교란되지 않은 채로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있기 때문에 죽은 물고기의 퇴적물이 명백한 증거품을 남기니 비늘이 그것이란다. 물고기 비늘에는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게라틴’이라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방사성 동위원소, 혹은 형성된 층리를 통하여 생성 연대를 알 수 있으며, 퇴적된 비늘의 모양과 수로 퇴적 당시에 서식하고 있던 물고기의 나이와 번성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신화적 상상력이 발동한 것인가.
명상의 바다가 출렁거렸고, 황금조기의 잔흔이 황금비늘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수백 년간 잠들었던 비늘들이 깨어나다니! 그때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비늘들이 깨어나는 순간부터 벌어졌다.
제방이 터지고, 거대한 물줄기가 간척지를 휩쓸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황금빛 비늘은 황금투구처럼 번쩍거려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바다는 온통 환희의 도가니로 접어들었고, 저물어가는 석양을 온몸으로 맞으며 황금의 축제가 옛바다에서 열렸다. 놀라운 일이 다시 벌어졌다. 사라졌던 조기들이 나타나다니! 조기들은 모조리 헐벗고 있었는데 개펄에 숨겨졌던 비장의 황금비늘들이 저마다 달려가서 겉옷으로 변신하였다. 저마다 황금비늘로 치장하고 바다를 헤엄쳤다. 이제 변신에 성공한 황금조기들이 긴긴 겨울잠을 자려 남쪽 나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물살들, 때로는 황홀할 정도로 매혹적이고 아늑한, 그러나 너무도 자주 거역의 몸짓으로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물살들을 헤치며 신화의 시대로 빠져 들어갔다. 나는 이를 ‘제3의 변신’이라 명명하였다.
물고기가 사라진 현실의 바다는 하나의 사막이다. 명상의 바다에서나마 ‘희망의 근거’를 끝까지 보듬어 안아야 한다. 현실은 너무나 두렵고, 자본의 무자비함은 너무도 가혹하기에 마지막까지 ‘희망’이란 두 글자만이라도 움켜쥐고 살아야 한다. 조기는 사라졌으나 그가 황해에 남긴 신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고 믿어야 한다. 황해의 잃어버린 신화는 바로 ‘희망의 근거’인 탓이다.
고독한 메트로폴리스에서 신화마저 사라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