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5권

백합 이야기
제5회 <풀꽃상>을 받은 백합은 높이 7센티미터 정도, 길이 9센티미터 정도이고 갈색의 껍질에 ∧∨ 모양의 여러 가지 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 가지의 제각기 다른 문양을 가졌다 하여 백합(百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특이한 백합은 부안에서도 계화도 갯벌에서만 나는 부안의 대표적 특산물로 조선시대에는 왕실 진상품이었다고 합니다. 백합에는 조개류에 많은 콜린과 라이신 효소가 많이 들어 있어 숙취에 효과가 좋습니다. 횟감으로, 탕으로, 구이로, 죽으로 요리하면 백합 특유의 향긋함과 감칠맛이 나는 고단백 식품입니다. 가격은 1킬로그램에 12,000원부터 15,000원으로 비싼 편입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사업이 강행된다면, 잠시는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나중에는 영영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일찍이 ‘백합’만을 다룬 제종길 박사님의 글을 얻어 싣게 되어 반갑습니다.--풀꽃세상--

조개 중의 조개, 백합

제종길(한국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

만경강 하구에 위치한 작은 포구 금포.
부두 길 양쪽으로 쌓여 있는 조개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이곳에선 ‘상합’이라 부르는 백합(Meretrix lusoria)이다. 큰 것은 제법 주먹만한 것이 네댓 개만 놓아도 족히 1kg은 넘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돋보이는 이유는 단지 크기 때문이 아니라 곱게 생긴 모양 때문이다. 어느 누가 갯벌에서 이렇듯 크고 고운 조개들이 자라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백합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합, 중합, 문합, 화합, 쌍합이라 하는데 ‘합(蛤)’은 조개를 뜻한다. 합은 비록 한자어이긴 하지만 합이라는 이름을 주어 조개를 대표하는 자격을 준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백합이 속한 과의 이름은 이 종의 이름을 따 백합과로 부르고 이 과는 전체 조개류(이매패류)를 대표할 때가 많다. 백합과에는 백합 외에도 바지락, 대복, 떡조개, 가무락조개등 수산업상으로 중요한 종들이 많다. 백합은 어느 지역에서나 합이라 이름 붙어있고 사람들로부터 식용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조개들에 비해 귀하게 취급을 받고 있다. 가격에서만 보아도 백합은 단연 최상급이다. 백합은 1kg에 팔천원이나 동죽은 25kg에 만원이니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젓갈로도 유명하지만, 탕, 죽, 숙회, 회 등 어떤 요리를 하여도 그 맛이 뛰어나 이런 큰 가격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백합의 조가비 모양은 삼각형으로 매우 두텁고 단단하다. 두 쪽의 조가비가 같은 생김새이며 양쪽으로 볼록하다. 꼭지는 돌출 되었으며 서로 가깝게 나 있다. 길이(穀長)가 높이(穀高)보다는 큰 옆으로 긴 형태이다. 색은 갈색이나 꼭지 부근이 옅은 색이며 약간의 갈매기 무늬가 있다. 어릴 때는 보다 다양한 무늬를 띠며 성장선은 뚜렷하지 않다. 표면은 아주 매끈하고 기름을 칠한 듯 반들반들한 윤기가 나고 광택은 얇은 각질의 표피층에 의한 것으로 건조시키면 곧바로 말라 벗겨진다.
조가비 꼭지의 안쪽 바로 아래에는 세 개의 이빨이 있는데 뒤쪽에 있는 것이 가장 길고 다른 두 개는 八자 모양으로 나 있다. 안쪽 면은 희고, 두 개의 여닫이 근육의 자국이 뚜렷하다. 조갯살의 자국은 둥글고 뒤쪽은 입을 벌린 모양으로 함몰되어 있다. 자국의 바깥쪽은 안쪽보다 광택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에는 백합과 유사한 두종- 라마르크백합(Meretrix lamarckii)과 말백합(Meretrix petechialis)이 있으나 백합보다는 조가비가 크고 표면의 무늬도 조금 다르다. 특히 라마르크백합과는 입수관 입구의 촉수의 모양에서 뚜렷한 차이가 난다. 백합은 단순한 나뭇가지 모양이나 라마르크백합은 톱니 모양이다. 조갯살의 맛도 백합이 두 종보다는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종은 분포 - 라마르크백합은 인천 근해, 말백합은 낙동강 하구에 제한되어 있는 반면에 백합은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널리 분포하고 있다. 전라북도, 경기도, 평안남도, 황해도에서 다산하며, 중국과 일본의 연안 그리고 사할린에서도 분포한다.
백합은 펄이 섞인 모래바닥에서 많이 사는데, 주로 조간대 하부에서부터 나기 시작하나 수심이 10m가 넘는 곳에서는 살지 않는다. 어린 시기에는 하구 주변의 염분이 높지 않은 곳에서 성장하나, 성장하면서 염분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대체로 생산량이 높은 곳은 담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으면서 파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 않는 지역이다.
조류가 강하거나 파도가 거센 곳에서는 전혀 서식하지 못한다. 저질환경으로 보면 이 조개가 다양한 퇴적형태에서 발견되기는 하나 완전 펄 지역에서는 살지 못하고 가장 적정한 지질은 모래가 60% 이상, 펄이 40% 이하인 곳이며 종패와 치패는 모래성분이 더 많아야 한다. 따라서 강의 하구와 인접한 갯벌이 백합에게는 최적의 서식여건이라 할 수 있다.
산란시기는 7월에서부터 10월 사이이고 적기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의 수온이 상승하여 따스해지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봄이 지나면 조간대로 이동하여 산란을 하고 늦은 가을 수온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겨울을 지내기 위해 깊은 곳으로 옮겨간다. 오 년 내지 육 년생인 성패는 600만에서 700만 개 정도 알을 낳고 많을 때는 1,000만 개나 된다. 수정을 한 유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2-3주) 부유생활을 하다가 조가비 형태가 나타나는 시기에 저서생활을 하기 위해 바닥에 내려앉는다. 어린 조개는 간조시 다섯 시간 정도 노출되는 조간대에서 자라다가 점차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백합은 조개류 가운데 이동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어린 조개는 삼사 년 동안에는 빠르게 자라지만 그 이후에는 더디게 성장한다. 큰 개체는 조가비 길이가 11cm가 넘으며 이때 높이 9cm, 너비는 5cm가 넘는다. 수명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7-8년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백합은 보통 5cm 정도 퇴적물을 파고 들어가 살지만 여름엔 보다 얕게, 겨울에는 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먹이는 규조류를 비롯한 식물플랑크톤이나 해수중의 유기물이고, 큰구술우렁이나 피뿔고둥에게 잡아먹힌다.
백합은 경제적인 중요성으로 1960년대부터 양식이 시도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는 생산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백합의 적절한 서식지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것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간척사업에 따른 매립과 환경오염으로 전국의 하구 환경이 크게 바뀌기 시작하였으며 이제는 옛 모습을 간직한 온전한 강의 하구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