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이야기 3

“얘야, 길 좀 쓸자” 어린 시절 아침마다 아버지는 그런 호출로 나를 깨우셨다. 대문 앞의 골목을 쓸도록 지시하신 것이다. 이불 속에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떼를 쓸 수 없었다. 눈을 비비며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따라 빗자루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 길을 쓸어야 했다. 아버지는 우리 집 앞뿐만 아니라 골목 전체를 청소하셔야 직성이 풀리셨다. 그러다 보니 옆집에서도 미안해서 빗자루를 들고나올 때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이웃 사이에 자연스럽게 인사가 오가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집 앞 골목은 주민들이 스스로 관리하는, 따라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치하면 한없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지금도 단독 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에는 아직도 그런 공동 관리의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골목이 종종 있다. 이제 도시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 가는 골목은 도대체 어떤 공간인가? ‘골목’하면 금방 연상되는 말이 ‘골목대장’이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가족을 벗어나 또래 집단 속에서 사회를 만들어보는 첫 무대이다. 거기에서 아이들은 권력이라는 것을 체험한다. 그러니까 골목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사회적 삶이 형성되는 소우주인 셈이다. 골목의 공간적인 얼개를 보면 아이들에게 매우 의미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골목은 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너무 넓지도 않고 너무 좁지도 않다. 그래서 아이들을 압도하지도 않고 또한 가두어두지도 않는다.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너무나 광활하고 거대한 공간 속에서 왜소해져 있고, 다른 한편 너무나 옹색한 개실(個室)에 억류되어 지내는 현대 도시인들의 삶에서 골목은 몸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공간으로서 재인식될 만하다. 그러한 공간적 적절성은 단순히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면에서도 고찰될 수 있다. 골목은 적당하게 닫혀 있으면서 적당하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즉 골목은 한편으로 그 자체로 하나의 자기 완결적인 공간으로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감싸안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골목은 자연스럽게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 연계의 한 축에는 더 커다란 길이 있고 다른 한 축에는 집이 있다. 각 집은 골목을 구성하는 요소이고, 골목은 또한 더 커다란 길과 접점을 이루면서 동네를 구성한다. 삶의 공간을 크게 사유 공간과 공유 공간으로 나눈다면 그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이 골목이 있는 공간이다. 사유 공간 안에 있는 마당은 실내 공간과 달리 상당히 공유 공간의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동네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모여들어 놀이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골목은 열려 있는 공유 공간인데도, 그 골목을 끼고 있는 집들만의 배타적인 공간처럼 여겨진다. 사유 공간과 공유 공간이 완전히 이분화되어 가는 현대 도시에서 마당이나 골목은 그 사이의 점이 지대 또는 완충 지대로서 그 의미를 재평가할 만하다. 골목이라는 공간이 내포하는 규모의 적절성은 인지적인 차원에서도 깊은 관련이 있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혼자서 자기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벽에 높이 일련 번호로 쓰여 있는 동수(棟數)를 읽지 못하면 대상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골목이 있는 거주지에서는 아이들이 훨씬 일찍 자기 집을 찾을 수 있다. 추상적인 기호가 아니라 하나 하나 고유한 풍경으로 대상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특유한 얼굴과 모양새를 갖고 있는 골목들을 다니면서 아이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다양성은 골목을 다니는 재미를 더해준다. 골목 길 가운데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이 많다. 그래서 움직임에 따라서 자기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다채롭다. 저 어귀를 돌아서면 어떤 장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러면서도 느긋하다. 그렇다. 골목은 이동하는 통로이자 동시에 머물러 쉬는 마당이다. 그래서 거기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들 사이에 만남이 이뤄진다. 그러니까 그 공간은 소박한 추억들이 담기는 그릇이다. 자동차에 밀리고 쫓겨 종종걸음으로 내달음치는 도로에서 맛볼 수 없는 정취가 거기에 깃든다. 겨울이 찾아 들어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어김없이 들려오던 찹쌀떡 장수 소리는 골목이라는 공간 속에서 공명(共鳴)하여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렇듯 골목이라는 공간의 분위기는 다양한 감각적 재료들로 구성된다. 골목은 매우 구체적이고 그래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대상이다. 너무나 거대해져 추상화되어버린 도시 공간 속에서 골목은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체취가 느껴지는 안온한 구석 같은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은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알려져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도 번지수만 알면 집을 찾을 수 있지만, 골목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네에서는 그것이 안된다. 그래서 집을 찾으러 오는 손님에게 그렇게 안내한다. 어디까지 오면 쌀집이 보이거든요. 거기에서 아무개네 집 어디냐고 물어보면 가르쳐 줄 거예요. 그러니까 가게나 약국이 단순히 상거래만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동네의 정보를 담고 있어 제공하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통해서 마을의 소식들이 소통되고 공유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디어 기능도 한 셈이다.

요즘 들어 골목은 사뭇 살벌해졌다. 특히 연립주택과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곳에서는 주차 전쟁이 심각하다. 남편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아내들이 나가 저마다 집 앞의 주차 공간을 확보하여 지키고 서 있는 동네도 있다. 일렬로 주차되어 있는 골목의 경우 아침마다 차를 빼달라고 이 집 저 집 문을 두들기며 아우성치기도 한다. 이웃간에 험상궂게 얼굴을 붉힌다. 스트레스가 악순환을 일으키면서 골목은 가능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요즘 골목은 통과 교통으로 매우 위험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들은 마음놓고 뛰어 놀지 못한다. 골목은 더 이상 그 길을 끼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편안하게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외부인들이 어느 목적지를 향해 재빠르게 가로질러 통과하는 지름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목에 나오지 못한다. 저녁마다 주민들이 평상을 깔아놓고 담소를 나누던 풍경은 사라져간다. 인사동 골목길에 수여되는 풀꽃상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흉칙한 몰골로 비대해져온 서울의 한 가운데에 무슨 꽃을 피우려 씨앗을 심는가. 돌진적인 근대화 그 속도에 휘말려 정신없이 공간을 갈아 엎어온 발자취는 곳곳에 겁탈의 상흔을 남겨놓고 있다. 갯벌의 가치를 당장의 개발 이익으로만 환산하여 메워버리듯, 골목이 담고 있는 정서적 자원들을 우리는 부동산의 가치로만 평면화하여 큰 도로와 높은 건물로 덮어버렸다. 경제가 성장하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 문화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골목의 소중함이 새삼 인지되기 시작했다. 인사동의 자잘한 골목들이 재평가되고 있다. 대구에서는 골목길 가꾸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골목은 인류의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서양의 도시에서 광장이 시민적 공공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기반이었다면, 동양의 도시에서는 길이 그와 비슷한 기능을 했다. 사람들이 만나 어울리면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문화 현장이 바로 길이었다. 골목은 그러한 길의 한 가지 양태로서 생활에 가장 밀접해있으면서 사회로 이어지는 소박한 회로이다. 그 공간이 지니고 있는 문화 생태적인 의미를 보편적으로 재해석해냄으로써 우리는 미래 건축 디자인과 도시 계획의 귀중한 실마리를 얻어낼 수 있다. 그 작업은 이미 시작되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인사동 골목은 그러한 역사적 보고(寶庫)로서 그리고 골목이 함축하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집약하는 원형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 수여되는 풀꽃 상으로 숨죽여 스러져가던 그 공간의 생명이 건강하게 소생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