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들에게 일어난 일

▶풀씨1453 권경업 님 : 부산지역을 대표하던 전위 산악인의 한 사람인 권경업 님의 다섯 번째 산악연작시집, 『자작 숲 움 틀 무렵』이 도서출판 명상(대표 : 풀씨1055 이영기 님)에서 나왔습니다. 1990년 10월부터 백두대간의 남녘 약 1,600킬로미터를 80여일 동안 종주하여 월간 「사람과 산」에 「백두대간 연작시」 60여편을 연재, ‘산악시’라는 장르를 개척한 권시인의 시를 읽은 신경림 시인께서는 “세련되거나 훌륭하다고 말하기 여려운 데도 이 시(「달」, 「먼동」)를 읽고 나면 벌떡 일어나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고 싶은 생각이 솟구치니 어쩌랴.”하는 서평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권시인은 “이 작품들은 창작이라기보다 물질만능과 편리주의에 야금야금 무너져 가는 산의 아픔을 대필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또한 권시인은 <풀꽃세상>이 여러 이유들로 후원금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거금 50만원의 후원금을 흔쾌히 쾌척한 시원시원한 산사나이기도 합니다.

▶풀씨1200 이목일 님 :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10월 9일, 이목일 풀씨가 벽제 가람미술관 풀밭에서 풀씨최미규 님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의 지인인 개그맨 전유성 풀씨의 비관습적인 사회로 진행된 결혼식은 근래에 보기드문 자유롭고 활달한 한 편의 퍼포먼스였습니다. 멍석을 깔아놓은 운동장처럼 널찍한 풀밭 한쪽 가에서는 통돼지가 구워지고 있었고, 내로라 하는 화가, 문인들, 연극인들이 대거 모여, 이목일 풀씨가 살아온 뻑적지근한 이력을 하객의 다양성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잊혀지지 않는 일은, 행위예술가 무세중 풀씨가 그동안 신랑과 나누었던 오랜 시간에 대해 말한 파격적인 연설이었습니다. 그 연설의 내용을 소개하는 일은 이목일 풀씨가 <풀꽃세상>을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걸까봐 생략하겠습니다. <풀꽃세상> 이름으로 인천의 오병임 풀씨가 대형 화환을 보내주셔서, 우리 모임이 적힌 리본이 결혼식 시작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바람에 펄럭인 일을 특히 고맙게 기억합니다.

▶풀씨1492 백명수 : 수원 동우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고 계시는 백명수 풀씨께서는 졸업하는 학급의 55명 제자들 모두에게 선물을 드렸으니, 그 선물이 제자들 모두를 1천원 약정액의 <풀씨>가 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풀꽃세상> 이야기를 해드린 뒤, <풀씨>(회원)가입을 졸업선물로 드린 그 시간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은 없었을 것입니다. 백선생님 같은 분들 때문에 우리는 조금 소리내서 ‘희망’을 발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선생님이 뿌린 <풀씨>가 언젠가는 이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은 더 진화된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드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교실 붕괴? <풀꽃세상>은 그 말을 안 믿고 싶습니다.

▶풀씨1445 박정남 님 : <풀꽃세상> 일이라면 민둥산이든 미사리든 춘천이든 헌신적으로 동행하는 것으로 협조하고 계시는 박정남 풀씨 집에 지난 11월 말께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놈(혹은, 도둑×)이 훔쳐간 것은 박정남 님이 수년간 쓴 시나 일기 등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자료가 다 내장되어 있던 노트북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하고 있다가 뭐 또 잃어버린 게 없나, 살폈더니 아직 쓰지도 않은 향수 한 병이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방안에 있던 고급 카메라는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도둑×은 필경 ‘또라이 도둑’이 분명한 듯한데, 박정남 풀씨는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한 보름간 식음을 전폐하고 한숨만 쉬었다고 합니다. 월부로 산 노트북 값을 아직도 2년이나 더 물어야 한다는 사실은 <풀꽃세상> 가족들의 마음을 매우 비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밥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면, 카메라도 가져갈 것이지 향수는 왜 가져갔을까. 노트북은 그렇다손쳐도 노트북 속의 자료는 어디 쓰려고? 못된 도둑×!

▶풀씨1013 신명덕 님 : 지난 11월 20여일간 신명덕 님은 일본의 가나자와 지방에서 장승작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장차 가지게 될 일본 전시회를 위해 현지에서 작업한 뒤, 일본의 친구들 집에 눈비 안 맞게 작품을 잘 간수한 뒤 돌아오곤 하는, 신명덕 님이 그러나 그리 넉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왜 하필 일본에 가서 장승을 깎느냐?”고 물었더니, “어쩌다 일본친구가 생겼고, 그들이 자주 초대를 해서, 어찌어찌 그렇게 되었어요.”라고 머리를 긁적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벌어질 일본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이 많이 소화되기를 바랍니다.

▶풀씨1020 정호승 님 : 널리 알려진 시인, 정호승 님은 비슷한 시기에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아름다운 동화집을 펴냈습니다.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비평사)와 어른이 읽는 동화집 『항아리』(열림원)가 그것입니다. 그의 시집을 펼치자 만난, 한 편의 시 때문에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눈 내리는 날 / 경기도 성남시 / 모란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 천원짜리 한 장 내밀고 / 새점을 치면서 / 어린 새에게 묻는다 / 나같은 인간은 맞아 죽어도 싸지만 / 어떻게 좀 안되겠느냐고 / 묻는다 / 새장에 갇힌 / 어린 새에게(「새점을 치며」 전문)’

이러한 정호승 님의 시가 환기시키고 있는 시적 힘을 시인 김승희는 ‘맑음의 참혹성’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풀씨1023 이근후 님 : <풀꽃상> 선정위원이신 이근후 선생님이 하고 계시는 활동은 가히 초능력적이라 할 만합니다. 학생들 가르치고, 환자들 진료하고, 보육원생을 위한 활동에, 석불연구회, ‘생명의 전화’팀과의 활동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거기에 근래 개설한 인터넷 청소년 성상담사이트(www.ahsex.org) 운영까지 덧붙여집니다. 사이트 도메인이 불러일으키는 야리꾸리한 성적 관심 때문에 개설하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후문인데, 청소년은 물론 학부모와의 성과 관련된 대화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극히 밝고 건전한 사이트입니다. 또한 1999년 2월부터 이근후 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가족아카데미아’에서는 네팔의 간질환자와 티베트 난민을 돕는 비타민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1구좌 1만원으로 누구나 비타민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전화 02)732-8144).

▶풀씨1627 김승익 님 : 인천 보각선원(寶覺禪院)에 주석하고 계시는 적산(寂山) 스님이 곧 김승익 님으로서, 우리 <풀꽃세상>의 첫 번째 풀씨스님이시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공평아트센터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화력(畵歷) 20여년만에 첫 전시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예술에 대한 스님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스님은 산수 인물, 서예 등을 주내용으로 한 140여 점의 수묵화와 채색화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서법을 익히면서 마당 밖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를 여묵(餘墨)으로 농기(弄技)를 했던 것이 그림 그리는 모티브가 됐다는 적산 스님의 화면구성과 설채(設彩)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림 또한 ‘한 불사(佛事)요, 자기완성의 방편’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스님의 정진을 빕니다.

▶풀씨1600 무세중 님 : 새천년을 무슨 축제처럼 맞이하는 세밑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절대로 지난 100년을 이렇게 홀린 것처럼 어처구니없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모여서 집단적 참회의 의식을 벌여야 한다”라고 홀로 신음하던 무세중 풀씨가 마침내 주축이 되어 벌이게 된 ‘지난 백년을 되새기며 진혼제를 마련하는 100인 모임’이 1999년 12월 27일 오후 7시 동아생명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무세중·무나미(굿), 이목일(슬라이드와 드로잉), 권경업(시), 김대환(북연주), 이광수(풍물), 소니아 한(퍼포먼스), 마광수(시), 유진규(몸짓), 하재봉(시), 김태곤(노래), 강은일(해금), 배희권(에로틱 퍼포먼스)…등의 반인습적 광대(?)들이 제멋대로, 일정한 순서없이, 즉흥적 흥취로, 지난 100년간의 통한을 되새기며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한 극진한 진혼제를 올렸습니다. 동시에 새천년 2000년에는 기필코 이 땅에 통일과 평화가 오기를 비는 한마당을 요란뻑적지근하게 벌였습니다. 이제 무세중 님은 역사 앞에서 좀 덜 부끄러워지셨으리라 믿습니다.

▶풀씨1561 고철 님 : 카트만두에 소재한 한국불교문화진흥원(원장 금정스님)이 후원하고, 나팔꽃 통신이 기획한 <히말라야 소식> 1999년 겨울 0권0호가 마침내 발간되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어 매체를 발행하는 일의 어려움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극복한 고철 님과 고생하신 수자타보살, 나팔꽃 스님 등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큰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염되지 않은 채 원초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히말라야의 신선한 바람이 온세상에 불어 자연과 사람의 영혼을 정화한다는 희망에’ 이 책의 발간의미를 두겠다는 발행인 금정스님의 말씀은 깊고 울림이 큽니다. 0권0호의 특집은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이며, 룽다가 나부끼는 랑탕 마을의 화보가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9년간 노동자로 일했건만 임금을 다 받지 못하고 몸만 상해 돌아간 네팔 젊은이 파상 셀파의 수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고 있습니다. 1권에 2천원, 한국판매처는 풀씨 정무진 님이 일하고 계시는 ‘인디아클럽’(02-723-0341)입니다. 히말라야 문화에 관심있는 풀씨 들의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풀씨1644 케피 시토우라 : 우리 모임의 유일한 네팔인 풀씨 케피 시토우라가 총무로 일하고 있는 재한네팔인공동체(N.C.C)에서는 2000년1월2일 오후1시 부천복사골문화센터(2층) 대공연장에서 네팔영화를 상영합니다. 새해 원단을 한국에서 상영되는 첫 네팔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장식해도 좋을 듯합니다. 영화제목은 ‘삐르데시 깐차’이며, 영화상영 외에 네팔 민속촘 및 노래 공연도 있다고 합니다. 나쁜 한국인도 적잖이 만났지만, 한국에 와서 일도 하고 돈도 벌었으니, 이제는 자기네 네팔문화도 소개하고 싶다는 네팔 노동자들의 마음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연락처 032-654-0664

▶풀씨1437 정무진 님 : 한국과 인도사이의 문화 교류를 폭넓게 만들고자 하는 ‘한인동호회’의 취지를 구현하고자 정무진 님이 애쓰고 계시는 인디아 클럽에서는 안국동 사무실에서 매주 토요일 문화강좌를 엽니다. 여러 풀씨들이 강사로 초청되었습니다. 10월 2일 『떠나는 자만이 인도를 꿈꿀 수 있다』의 저자 임헌갑(1436) 풀씨, 10월 16일 『안으로의 여행』의 저자 송기원(1435) 풀씨, 11월 20일 『그래서 나는 히말라야에 빠졌다』의 저자 임현담(1540) 풀씨, 그리고 11월 27일은 방금 히말라야를 다녀온 최성각 풀씨(1004)가 초청강사로 참여했습니다. 우리 <풀씨배포처>이기도 한 인디아클럽의 발전을 빕니다.

▶풀씨1073 이대환 님 : 포항에 사는 소설가 이대환 풀씨가 새장편소설 『겨울의 집』을 실천문학사에서 펴냈습니다. 소설(문학)만은 물신(物神)의 지배속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산문정신이 돋보이는 이 장편소설은 종국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갖춘 자본주의’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홍세화 님은 소설책의 뒷표지에서 이 소설의 투박하고 순박한 인물들의 생명력을 만나자 문득, ‘네가 죽어 흙이 되면 녹음방초 우거진다’라는 오래 전에 잊어버린 구절이 상기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책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풀씨1075 방현석 님 : 소설가 방현석 님의 노동현장 취재기가 『아름다운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작은책에서 나왔습니다. 20세기 한국노동운동사를 정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뿌듯한 이 기록은 1997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1년반 가량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에 연재된 글들입니다. 이 취재기는 1970년 전태일 열사의 혼이 담긴 청계천에서 시작되어 1987년 인천 5·3항쟁, 1990년 KBS파업을 거쳐, 19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투쟁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른바, ‘20대 80’의 세계질서 개편이 무섭도록 완강하게 진행되는 마당이라 이 책에 담긴 노동해방의 소망은 오늘도 새롭게 가슴을 칩니다.

▶풀씨1056 이두엽 님 : 이두엽 풀씨의 연말연초 계획은 강화도로 가는 일이라고 합니다. “거기는 왜?”라고 묻자 “책 좀 읽으려고요.”라고 답했습니다. 너무나 이상하고 놀라운 대답이어서 크게 놀랐으나 정신을 차리고 “아니 지금 뭐라고 그랬지요, 책을?”, 하고 다시 묻자, 그것도 질문이냐는 얼굴로 “술도 좀 덜 마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면 책 읽는 수밖에 없잖겠어요. 그리고 강화도가 우선 가까우니까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모두들 새천년 해돋이하러 동해안으로, 스키장으로 몰려가고 있을 때, 그런 멋진 새해계획을 세워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반성하게 한 이두엽 풀씨에게 새천년 내내 폼나고 좋은 일만 펑펑, 터지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풀꽃상>을 ‘인사동 골목길’에 드리자는 멋진 제안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풀씨>4집 교정작업으로 밤을 새웠으며, 인사동에 걸린 두 개의 플래카드 중 한 개를 떠맡기도 한 이두엽 풀씨의 용단에 감사 드립니다.

▶풀씨1179 허태수 님 : 춘천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허태수 목사님의 10번째 설교 모음집을 『자기포기』라는 제목으로 진흥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나를 포기하는 것은 나를 비워 예수를 얻는 것입니다’라는 표제어가 책이 담고 있는 허목사님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풀씨1000 천초영 양의 1주기 때 만난 허목사님께서는 신축한 교회당의 마무리 작업으로 바쁘신 것을 보았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허목사님은 달덩이같은 늙은호박 두 덩이를 <풀꽃세상>에 선물로 주시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풀씨>4집 작업 때 도와주신 <풀씨>들과 함께 호박죽을 잘 끓여먹었습니다. 인사드립니다.

▶풀씨1184 박삼균 님 : 1인교육잡지 <박선생이야기>제5호를 냈습니다. 참 교육을 위해 고민하는 한 중년교사의 현장교육 철학이 그 특유의 걸죽한 입심으로 날카롭고도 통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통신공간과 다른 교육매체에서도 <박선생 이야기>를 매우 희귀하고 반가운 일로 받아들이는 눈치입니다. <풀꽃세상>은 박삼균 풀씨의 작업을 돕는 게 방황하고 비틀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한국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아주 약간의 우표값을 보낸 바 있습니다. 책을 받아보기를 원하는 <풀씨>들이나 고독한 1인잡지의 지속적 발간을 위해 힘(우표값)을 보탤 분들은 ‘농협온라인 255-12-211304 박삼균’을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풀씨1631 이수연 님 : <풀꽃세상>의 ‘가족풀씨’인 이수연 님 가정에서는 새 동전이 생기면 가족 모두 특별히 마련된 저금통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풀꽃세상> 회비만은 새동전을 모아 내고 싶다는 가족 모두의 일치단결된 마음 때문이랍니다. 이수연 님댁 같은 ‘가족풀씨’ 때문에 <풀꽃세상>은 깊은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헛되이 소진할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위한 일을 찾는 데, 더욱 생산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이수연 님댁에 새천년 내내 은총이 내려지기를 빕니다.

▶풀씨1368 양수용 님 : 어느날 불쑥 전화를 드렸더니, <풀씨카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재생지를 사용한 우리 풀씨카드는 아주 작고, 어떻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처음 <풀씨>가 되셨을 때 꽃씨와 함께 보내드린 그 보잘것없는 <풀씨카드>를 양수용 님께서는 책상 유리 아래에 깔아놓고, 잘못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려다보며 새 기운을 얻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양수용 풀씨 때문에 우리 모두 새기운을 얻곤 합니다. 이 세상은 비록 그 속도가 더디지만, 조용히 변화되고, 나은 쪽으로 가고 있다는 희망을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풀씨1593 손미애 님 : 가을에 결혼식을 치른 손미애 풀씨는 결혼식 하객들에게 <풀씨>3집 100권을 준비해서 뿌렸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손미애 님이 결혼식 때 뿌린 <풀씨>가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아직 <풀꽃세상>까지 기별이 오지는 않았지만(기별이 안 온들 조금도 괘념치 않을 일이지만), 손미애 님의 마음에 <풀꽃세상>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풀씨1601 김대웅 님 : 80년대 사회과학, 특히 루카치와 마르크스 번역자로 널리 알려진 김대웅 풀씨가 또 한권의 번역서를 펴냈습니다.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여행』(웅진출판)이 그것으로,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아시모프의 재미있는 그리스 신화와 언어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남긴 상상력과 영혼의 지문, 지식과 언어의 시생대, 신화 속에 맞닿은 상징과 언어의 뿌리들을 파헤치고 있는 책입니다. 늘 매절만 일삼다가 이번에는 인세계약을 했다고 하니 책이 잘 팔려서, 지난 세기에는 대체로 늘 무일푼인 김대웅 님에게 새천년에는 좀 다른 상황(장가도 가고, 등등)이 벌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풀씨1475 강명식 님 : 3회 민둥산 시상식 때 제멋대로 일그러진 마음 편한 봉고차를 끌고 나타나셔서, 정선까지 가는 동안 여러 <풀씨>들에게 난폭운전과 모범운전의 차이를 실감나게 확인시켜주셨던 씩씩한 풀씨 강명식 님은 영등포에서 술집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아주 가끔씩은 머리에 무쓰를 번쩍번쩍 바른 청소년들이 들어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강명식 님은 잘 타일러 내보내곤 했답니다. 하루는 몇 청소년들에게 다른 날처럼 듣기 좋게 잘 타일러 보내려 하는데, 한 청소년의 입에서 거친 쌍욕이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점잖게 반응했더니, “뭐 이딴 술집이 다 있어, ×팔!”, 어쩌구 한 모양입니다. 강명식 님 왈, “쟤들도 이 땅의 어린 풀씨인데, 부모가 만약 술집을 경영해도 저렇게 반응했을까!”, 하시며 오래도록 쓸쓸해하셨답니다. 술 마시러 온 청소년들을 타일러 내보내는 술집이 우리나라에 몇 곳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법이 정한 원칙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원칙에 충실하신 강명식 님이 보기 좋습니다.

▶풀씨1703 김미해 님 : 어느날 <풀꽃세상>에 이철수 님 판화달력과 함께 날아온 편지 속에 동봉한 엽서입니다. 엽서 뒷면에는 신경써서 찍은 칼러플한 햄버거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습니다. 김미해 님의 그 작은 엽서 한 장은 우리가 얼마나 자원을 무신경하게 낭비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조용히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 무례하고 무서운 낭비의 시대에 대처해 나갈까 하는 작은 실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습니다. <풀꽃세상> 재산목록 13호쯤 되는 엽서를 소개합니다.

▶풀씨1004 최성각·풀씨1005 문순홍 님 : 두 풀씨가 11월 16일 제2회 교보환경문화상을 받았습니다. 최성각 님은 문화예술 부문(문학) 우수상, 문순홍 님은 환경연구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풀꽃세상>의 두 풀씨가 한국에서 가장 큰 환경상의 두 부문에 걸쳐 상을 받게 된, 이번 일로 <풀꽃세상>의 사회적 신뢰가 높아지게 된 일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분 풀씨에게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다음은 두 <풀씨>의 수상소감입니다.

풀씨1004 최성각

전화로 수상소식을 들을 때, 저는 정선군 남면 민둥산 억새밭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가을 억새’에게 제가 속해 있는 모임에서 ‘풀꽃상’을 드렸고, 억새 잔치를 여는 ‘남면 사람들’에게 우리는 부상을 드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내일 그 궁벽한 한촌에서 자그맣지만 성대한 시상식이 벌어질 생각으로 저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억새 한 포기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물어가는 지난 야만의 세기를 떠올릴라치면, 인간이 과연 스스로 옹호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묻게 됩니다. 간혹은 실현되기 힘들지도 모를 꿈 때문에 희생과 헌신과 이타심의 꽃이 피어나기도 했지만, 이제 꿈은 사라지고 모든 관계는 사용가치의 관계가 되어 버렸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잃어 버린 인간은 남루해지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긴 개발독재의 시간을 무슨 형벌처럼 치르면서 우리 한국사회는 더욱이나 비천해졌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제어력을 잃어 버린 욕심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환란으로 인해 그나마 있던 우려와 반성의 목소리는 움추려 들었고, 잠시 후에 우리가 치를 대가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져 버렸습니다.

책 읽고, 글 하겠다는 사람으로서 저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을 뿐 아니라 식기 잘하는 정열에, 좋은 작품을 써야 하는 작가로서의 책무에도 불성실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세계의 신음소리를 들으려 애썼으며 인간에 대한 저의 질문은 책상에 앉아있는 일만큼이나 자주 활동가들과 거리에 서 있게 만들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글쓰기는 저의 경우, 분리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들은 하나같이 인간성의 부패와 오염에 글과 몸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이 뜻밖의 정중하고 큰 상을 깊은 밤, 혼자 흐느껴 울곤하던 그 캄캄한 시간들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하렵니다.

‘새’와 ‘돌’에 이어 이제 ‘풀’에게 상을 드렸으니, 겨울 ‘풀꽃상’은 누구에게 드릴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풀씨1005 문순홍

이처럼 뜻깊은 상을 받게 되어,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과 심사과정에 참여해 주신 심사위원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편 생명론을 개척하신 웃어른들께 무척 송구스럽기도 하고, “젊은 내가 좀 더 많은 일을 해라”는 채찍과 짐 같기도 해서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소심하고 결벽같은 성격을 타고나 항상 글 쓰는데 조심해 왔습니다. 내 주장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남”의 글들을 뒤척이는 가운데, 어느 덧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때의 느낌은 마치 사막에서 길을 찾는 것 같았고, 공허하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적지 않은 분들이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은 작고 섬세한 논의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은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이 이 세계와 우리의 마음을 파란 희망으로 물들이는 또 하나의 촛대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