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이야기 5

인사동은 조선시대 도화서가 위치했던 곳으로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미술중심지로서 약 1백년을 이어왔다. 고서화, 고서적, 금속 및 목기, 고가구 등의 고미술점과 필방, 전통 음식점이 골목골목에 있어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1970년대 이후 현대적 상업화랑들도 한 둘씩 인사동에 둥지를 틀면서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지는 미술문화지역으로 발전해왔다.

인사동처럼 전통과 현대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이곳은 박물관처럼 문화의 봉안소이거나 생활과 유리된 성역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는 장소이다. 화랑 60여 군데, 고서 및 고미술 가게 80여 군데, 전통차 및 식당 관련업소 80여 군데 등 전통문화 및 예술 관련 업소가 산재해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며 숨쉬고 있다.

인사동의 의미는 단지 전통의 보존 차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상 인사동을 이끌어 가는 것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일방적인 규제만을 앞세운다면 결국 오랫동안 이 곳에 터를 잡았던 주민들이 하나 둘씩 인사동을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인사동을 이끄는 소프트웨어가 없어져 활기를 잃게 되고 만다.

가장 비근한 예로 최근 들어 불황의 여파와 함께 고미술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그 자리에 피자집이나 카페가 들어서고 있는 현실을 들 수 있다. 사거리 화랑 자리도 주택은행으로 바뀌었고, 동일 약국 옆에는 화랑 대신 빵집이 들어 섰다.

이렇게 방치하다간 인사동은 이전의 색깔을 잃고 이 거리 주변은 수익성이 좋은 음식점이나 술집의 침투로 문화거리로서의 위상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발전적인 방향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지원할 부분은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인사동 주민의 입장에서 반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하고자 한다.

일요일 차 없는 거리의 확대

차 없는 거리 운동은 각계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장터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이처럼 교통사고 걱정 없이 아이들의 손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서울에 몇 군데나 되는가?”라고 되물으면서 휴일을 이용해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차 없는 거리 지정구역은 인사동 사거리까지 만이다. 실제로 행사 당일의 현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과 거리의 좌판으로 인해 그 이외의 도로도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따라서 빠른 시일 안에 인사동 사거리에서 대일 오피스텔에 이르는 나머지 도로도 함께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인사동 문화 축제의 의미와 일요일 차 없는 거리지정이 가져다 주는 문화적 여파를 고려해 볼 때, 인사동 거리의 범위 확대는 좀 더 긴밀한 협조와 상호 이해 아래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쉼터 및 주차장 조성, 그리고 문화회관 건립

인사동에는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형편없이 부족하다. 일요일 문화장터에 나가보면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지 하나 제대로 없다. 돌아다니다가 한숨 돌리며 쉴 수 있는 넉넉한 쉼터, 녹지공간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인사동을 문화명소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문화시설의 유치도 절실히 요구되는 사안이다. 줄타기, 전통무용 공연 등 작은 행사 하나를 유치하려 해도 적당한 공간이 없다. 현재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와 종로구청이 힘을 모아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고 협의 중에 있다고는 하지만 최종 결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

법적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건축법 등 제도를 정비하여 한옥의 보존과 현대식 건축물의 조화로 전통과 현재의 삶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인사동 거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좋다. 인사동에 사는 주민들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서도 안락한 환경조성은 일차적인 조건이다. 낡은 건물은 개보수를 해야하고 너무 작은 평수의 건물은 때에 따라 신축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문화예술 관련 건물의 신축 시에는 탄력성 있게 관계법을 적용시킨다거나 혹은 발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럴 때에는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 관련 업종에는 감세, 면세 혜택 등 행정 세제에 대해 일정정도 혜택을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문화예술 관련 기구에 대한 면세조치가 취해졌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불황의 여파로 전통을 지키려고, 인사동 문화를 수립하려고 애쓰던 인사동 사람들이 더 이상의 적자를 감당 못하고 인사동을 떠나고 있다. 그 자리에 소비지향적 업소들이 들어서는 현상을 더 이상 방관해서만은 안 될 것이다.

인사동 문화의 관광상품화

전통문화를 관광상품화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있었다.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 회의실에서 공사관계자와 여행업계, 서울 봉원사, 국립국악원 서울놀이마당, 정동극장 등 관광문화 관련 각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관광상품개발 지원협의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관광자원화 하여 보다 많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취지에서 문화계와 관광업계의 공조가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앞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체험관광상품을 적극 개발키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취지에 인사동 만큼 적절하고 좋은 지역이 또 어디 있는가.

전통도 보전하고 지역발전에도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사동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볼거리, 먹거리, 흥거리가 충분한 훌륭한 관광지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앞으로 국내 여행사와 체계적이고 보다 긴밀한 유대강화를 통해 인사동 거리를 적극적으로 관광상품화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인사동 거리는 외국 관광객을 효과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충분히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가 된다면, 외국인에게 한국문화도 홍보하면서 외화까지 벌 수 있다.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외화를 획득할 잠재적 원천은 문화예술 밖에 없다. ‘관광한국’을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외국인에게 보고 즐기고 물건을 살 장소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따라서 한국 관광 발전을 위해 앞장서야 할 문화관광부와 관광공사 등 관계 기관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인사동을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우선 가장 필요한 것은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관광안내소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인사동 초입 양쪽에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원을 상주, 인사동을 찾아오는 외국 관광객들의 편의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 문화특구 지정 검토

문화특구란 문화예술품이 모여있는 장소로서 현대미술, 고미술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지역으로 정부에서 특별히 보호, 육성시켜주는 문화거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소호를 꼽을 수 있다. 소호(SOHO)는 문화특구로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인 작가 로버트 라우젠버그, 슈나벨 등을 배출시킨 레오 카스테리 화랑이나 매리분 갤러리 등 국제적인 화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예술인들에게 법적인 혜택을 주도록 되어 있다. 우리 미술인들 사이에서도 ‘소호에 가면 세계의 미술문화를 다 볼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소호는 세계적인 문화명소가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거리 인사동도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의 거리로 만들려면 소호의 예에서 취할 수 있는 교훈이 많다고 본다.

앞으로 인사동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서울의 상징이 되어 시민의 자존심을 높일 것이고, 문화적 삶의 메카로서 실제 삶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자국의 문화전통을 살리는 것은 문화대국 2000년의 비젼을 제시하는 척도이다. 조상의 얼이 살아 숨쉬는 인사동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인사동은 문화적 잠재력이 매우 큰 곳이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형성된 인사동의 좋은 문화적 환경을 지키기 위해 뜻 있는 지역 주민들이 여러 가지 노력을 모색하고 있다. ‘인사동 살리기’는 단지 이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서울시, 나아가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사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의 노력과 국가적차원의 정책지원이 잘 조화를 이룬다면 머지 않아 인사동은 세계적인 문화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