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세상>이 받은 편지

이 글은 <풀꽃세상>의 청탁에 의해, 김종철 선생님이 보내온 축하 메시지입니다. <가을 억새>에게 3회 풀꽃상을 드리면서 우리가 드러내려고 하는 메시지는 김선생님도 여러 지면을 통해 자주 이야기하시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임에 대한 김선생님의 따뜻한 시각에 감사드립니다.--풀꽃세상

깊고 부드러운 희망의 신호, ‘풀꽃세상’

김종철(『녹색평론』 발행-편집인)

‘풀꽃세상 사람들’이 이번에는 ‘가을 억새’에게 상을 드리기로 하였고, 이번 기회에 우리 자신이 억새풀 한 포기보다 과연 더 중요한 존재인지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고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릇이라면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하는 경제지상주의 밑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 주위의 목숨 가진 것들에 대한 상해(傷害)를 끊임없이 자행하는 끔찍한 세월을 오래 살아왔다. 그러나, 사람 자신이 본래 광포한 폭력에 토대를 둔 삶을 언제까지나 즐기거나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간성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심층(深層)에서 우리 각자는 작은 풀잎 하나, 벌레 한 마리와 친구로서, 형제로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맑은 하늘, 깨끗한 물,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키 큰 나무를 볼 때 저도 모르게 근원적인 자유와 행복의 느낌을 갖는 게 아닌가.

오늘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간성의 심층에 잠재되어 있는 그러한 자유와 행복의 가능성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더 의식적으로 열려 있음으로 해서 우리 사회가--나아가서는 전 지구 사회가--사회적 약자와 자연세계를 좀더 자발적인 존경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존경심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고양시키고, 우리의 의식의 경계를 확대하는 데 이바지한다. 우리가 억새풀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을 비하하거나 경시하는 일이 아니다. 억새풀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는 우리 자신을 좁고 메마른 작은 자아의 감옥으로부터 풀어놓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세우는 일을 멈춤으로써만 다양한 생명들이 자유롭게 살아나는 참된 자유와 평등과 풍요의 세상을 기약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이미 ‘풀꽃세상’을 구상하고, 운영해온 정상명씨 부부의 이야기에 감동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의 자식 사랑에는 단순한 이기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근원적인 차원이 있고, 또 우리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국 자식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의 어버이들에게는 자식은 아마 종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상명씨 부부는 이 사회의 뿌리깊이 조직화된 무책임과 반생명의 구조 때문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들의 소중한 딸 초영(草英)이를 잃었으면서도, 도리어 이 산천의 온갖 생명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이 터무니없는 사회에 대한 ‘복수’를 하기로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기막히게 깊고 부드러운 영혼의 존재이다. 정상명씨 부부의 이 이야기는 아무리 타락하고 망가진 세상일지라도 인간 마음의 변화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구원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신호를 나타낸다.

‘풀꽃세상’ 여러분의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으로 새로운 생명의 문화의 효모가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