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세상이 탄생하기 전에 보길도에 들렀던 풀씨1022번 권용철 님 또한 조그마한 탐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예송리 해변의 갯돌을 의기양양하게 서울로 운반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갯돌에 두번째 풀꽃상을 드리기로 했다고 하자, 권용철 님은 비장어린 반성문을 우리 <풀씨>에 기고하였습니다. 한 가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큰 결심'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반성문까지 기고한 그가 '슬쩍'해온 7개의 돌 중, 이번 기회에는 5개만 시상식 때 보길도 분들께 전달할 작정이라는 대목입니다.--풀꽃세상

"작은 반납, 큰 결심"

회사산악회를 따라 여행을 가보긴 실로 오랜만이었다.회사의 서클모임인 산악회는 매달 한번씩 정기적으로 등산이나 여행을 가기 때문에 이번 여행도 뭐 그리 새삼스러운 행사는 아니었다.

총각때는 그래도 휴일날 딱이 할일도 없고 혹시 웬 건수라도 하는 마음에 가끔 따라 다닌적도 있었으나 결혼후로는, 그런 명분이 모두 소멸되어서 그런지 통 따라 가본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4월 산행에 선뜻 따라 나선데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목적지가 관심을 끌었다.

'보길도' -전라도 남쪽 바닷가의 먼 섬이고 고산 윤선도가 살았다던 곳, 적당히 낭만과 시의 정취를 느낄수 있을 것같은 곳-그래서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워낙 먼 곳이라 이럴 때 따라가보지 않으면 나혼자 작심하고 가기란 평생 어려을 것같다는 계산 등, 이런저런 생각이 이번 여행에 나를 동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4월 3일 오후 1시.식목일 연휴가 시작되는 첫시간에 우리 일행은 버스로 보길도를 향했다. 총인원 40여명. 나는 아내와 동행했다. 밤10시 완도도착. 1박. 다음날 아침 7시, 버스를 태운 배로 보길도 입성.

보길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었다. 주변바다는 섬사람들의 생계의 터전으로 온통 그물망이 가지런히 쳐져 있었고 쪽빛바다는 4월의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모든 사람들이 보길도를 특히 잊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 유명한 해변가의 돌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뾰족산의 해변가와 예송리의 해변가를 둘러보았는데 그곳의 돌들은 그야말로 신비스러울 정도로, 마치 기계로 깍아놓은 듯하게 매끄럽고 둥글었다. 오랜 세월동안의 풍수작용이 이렇게 많은 돌들을 이렇게 정교한 자연의 걸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탐욕이 일기 시작했고, 해변가 게시판에는 이런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듯 "돌을 가져가지 마라" 는 경고가 이미 벌겋게 쓰여져 있었다. 적발시에는 벌금이 있다는 문구와 함께……

그러나 우리 일행은 도저히 '石慾'을 억누를 수 없었다.

지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돌 전부를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하는 마음에 우리는 가방속에, 주머니속에 몇 개씩을 집어넣고 마을어귀를 막 나가려는데 갑자기 동네 주민 두세 명이 "돌 놔두고 가세요" 하면서 우리를 막는 게 아닌가! 그분들은 마치 들여다본듯 "왼쪽주머니에 돌, 가방 안에 돌 "하면서 일일이 지적까지 하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창피하고 무안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얼른 돌을 내려놓은 채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다음 행선지인 예송리 해변가는 그런 봉변을 당한 뒤에 방문한 터라 그저 그 고운 돌들을 만져만 보고 감탄만 하는데 우리는 만족해야했다.

우리의 무안함도 곧 잊혀지고, 모두들 피곤해진 귀경버스 안에서 나는 옆자리의 아내에게 슬쩍 뭔가를 내보였다. 뾰족산 것 3개, 예송리 것 4개, 도합 일곱 개의 돌이 아내의 무릎위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었고 깜짝 놀란 아내는 "역시 내남편" 이라며 남편의 '유능함' 에 자랑스러워했고, 나또한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이룩한 대단함에 그 위용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이렇듯 자랑스런 나의 무용담이 그런데 이제 막을 내리려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날의 戰功을 내 친구에게 털어놓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소설 쓰는 그 친구는 문단은 물론 '환경' 쪽에서도 꽤 얼굴이 알려진 '악바리' 로, 나와는 고향 초등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모진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돼오는 그런 관계인데, 나는 글이나 쓴다고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그를 형편없는 날탱이로 여기고 있고, 그는 월급쟁이 한다고 넥타이나 쪽 매고 깔끔떠는 나를 한심한 속물로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 친구 성각이는 다짜고짜 그 돌과 함께 참회의 반성문을 즉각 써내라고 나를 윽박질렀고 나는 참회록을 쓰지 않을 수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 그런 '나쁜' 친구에게 말한 내가 잘못이지, 그 친구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는 이제까지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끔 매스컴에 보도되는 문제를 보고 환경이 많이 심각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그저 속으로 심드렁 가져볼 뿐이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강 두가지를 느끼게 되는데 하나는 그들의 열정과 순수함이고, 다른 하나는 참으로 세상 편한 사람들이로구나 하는 것이다. 환경일을 마치 자기집안의 급한 일인양 걱정하는 그 열정과 순수함이 존경스럽기조차 한 반면, 요즘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동강이 어떻고 보길도의 돌멩이가 또 어떻고 참으로 속편한 사람들이로구나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뛸노릇이겠지만 나와 같은 '속물' 들은 아마 대개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게 현실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보길도에서 가져온 장물을 내 친구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노획에 성공한 그 엄청난 '전리품 '을 나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내놓기로 한 것이다.

내가 그것들을 돌려주기로 한 것은 첫째 그 독한 성각이의 끈질긴 성화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이고 둘째는 그것이 옳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난 환경을 잘 모르지만 내 가까운 곁에 '그런' 친구를 둔 죄로 이제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광명이 있는 새세계로 '새삶'을 찾아 나아가고저 한다.

나의 이 작은 결심이 앞으로 나의 생각을 바꾸고 그 바뀐 생각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그러면 그만 아니겠는가! (1999년 5월 11일)